또다른 이별과 마주한다는 것은
인간은 당연히도 인생에서 수많은 이별을 마주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직을 하고, 이사를 가기도 하고 이민을 가기도 한다, 누군가는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렇게 이별을 마주한 인간들은 그대로 남겨지곤 한다. 야구도 언제나 그러하다. 내가 아마야구, 특히 고교야구를 보고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지난 10년간은 항상 같은 이유에서였다. 언젠가가 아니라 올해가 지나면, 길면 다음 해가 지나면 이 선수들은 다 떠나가고 내가 응원하던 팀은 한 시절로 스쳐지나갈거라는 허망함에 나는 학생야구를 보지 않았다. 프로에 가는 사람이 일 년에 백 명이라면 우리 팀의 선수는 얼마나 프로에 가고 얼마나 내가 사랑하는 히어로즈에 들어오겠는가, 이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렇게 내가 끊임없이 이별을 회피해도 삶에서 언제든 이별은 고개를 내밀고, 나는 속절없이 이별을 마주할 뿐이다.
언제나와 같은 날이라도, 누군가가 떠난다는 소식은 하루를 조금 우울하게 만든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에이스였던 나이트와 밴헤켄도 이 팀을 떠났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손승락도 떠났다, 가장 존경했던 유한준도 서건창도 박병호도 떠났고, 나의 첫 번째 캡틴 이숭용도 이 팀을 떠났다, 영원할 줄 알았던 송신영도, 오재영도, 송지만도, 김태훈도 이 팀을 떠났고, 평생 아픈 손가락이었을 정수성도 박정음도 이 팀을 떠났다. 그리고 그 너절했던 추억과 벅차오르는 영광을 내 품에 안겨주던 목동구장을 떠나기도 했다. 10년이 조금 넘는 짧은 시간동안 누군가는 선수생활을 마무리지었고, 누군가는 팀이 원해서 떠났으며, 또 누군가는 이 팀에 남을 수 없어서 떠났다. 평생 내 자랑이었을 강정호는 자랑스럽지 못하게 되었고, 내가 언제까지나 귀여운 막내로 볼 김하성은 기쁘게 떠났지만 그래도 한 켠에는 아쉬움을 남기고 떠났다. 이정후와 김혜성은 떠날 것이고, 어떤 미래에는 지금은 갓 들어온 아기포수 김동헌마저 떠날 것이다. 지나간, 그리고 지나갈 이별들 사이에서 오늘은 히어로즈의 수호신, 요키시가 내 팀을 떠났다. 6주짜리 내전근 부상으로 인한 웨이버 공시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쨌든 나는 슬프다. 이성 한 켠으로는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하지만, 지난 시즌부터 부각되어 올 시즌에는 우타자 상대로 투구내용이 좋지 못했던 점, 사실상 결정구가 없어서 운으로 막길 기도했다는 점, 내전근은 재발이 쉽다는 점, 요키시가 89년생의 투수라는 점이 모두 더이상 그를 기다릴 수 없다고 말한다. 2019년이라는 그리 좋지 못한 해에 와서도 5년간 이 팀을 지켜준 에릭 요키시라는 투수가 있어서 나는 매일 이 팀을 더 사랑할 수 있었다. 그가 가져다 준 수많은 영광의 순간이 나를 기쁘게 했고, 그가 대신 화내준 자잘한 순간부터, 요키시가 행복해하던 모든 일들은 나의 기쁨이 되었다. '하느님 부처님 요키시님 제발 재웅이가 아웃을 잡게 해주세요' 라는 소원을 빌게 할 정도로 요키시는 나의 수호신이었고, 히어로즈의 수호신이었다. 하지만 요키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고, 인간 사이에는 영원이란 없이 끝이 찾아오는 법이다.
이렇게 나는 인생에 몇 번째일지 모른 이별을 마주했다. 히어로즈 팬들은 아마도 KBO의 다른 구단들보다도 더 많은, 더 납득불가능한, 더 슬픈 이별을 많이 마주했을것이다. 세상에 영원이란 건 없고, 당연히 외국인 선수는 더 쉽게 버려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언제나 처절하게 체감했다. 그래도 내년에는 투수코치로 돌아오길, 나이가 있고 부상이 있어서 공은 던지지 못하더라도 나이트처럼, 송신영처럼, 오재영이나 박정음, 김지수처럼 코치로 이 팀에 돌아오고, 밴헤켄처럼 시구를 하고, 유한준처럼 KT에서 은퇴를 하면서도 자신의 은퇴식을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해 주고, 그래도 히어로즈 팬들에게 고마웠다고 말하는 박병호나 김태훈처럼, 그리고 자신은 히어로즈 팬들에게 항상 고맙다는 김하성처럼, 그렇게 모두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고,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 결국 언젠가는 다시 요키시가 우리 팀의 한 자리에서 반갑게 인사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을 떠나보내며 오직 그들의 행복만을 빌면서도 다시 팬이라는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닳고 닳은 낭만의 한 조각을 쳐다보며 다시 꿈꾼다. 내가 사랑했던, 지금은 잘 못하더라도 한 때 나의 낭만이었고 나의 꿈이었고 나의 빛이었던 선수와 헤어지지 않고 10위로 꼴아박는 미래를 한 켠으로는 꿈꾼다. 하지만 구단은 언제나 높은 순위에 올라서야만 팀을 유지할 수 있고 선수는 언제나 더 좋은 성적이라는 목표를 바라보고, 결국 그 선수를 원하는 구단은 다르다는 현실 속에서 팬들이 마음 한 켠에 남겨둔 허망한 낭만은 쓰레기통에 쳐박힌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다시 꿈꾼다. 영원히 아름다운 한 때를 꿈꾸는 것이야말고 팬이라는 이름 하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팬의 의무는 끊임없이 배반당하더라도 한 번 더 믿고 기대하는 것, 언제나 설레고 열정적일 것, 그래서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을 쏟아내는 것 뿐. 영원히 보답받을 수 없을 사랑을 한 팀에게 쏟아내고 내가 이 팀을 사랑했노라고 회상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렇기에 모두가 떠난 곳을 시끄럽게 채우면서 새로운 얼굴들이 다시 나의 영웅이 되어주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삶이란, 이 팀을 사랑하는 단 한 가지의 방법에 불과하다. 노래 가사처럼, 수많은 선수들이 떠나간 자리에서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한다. 버거울 땐 언제든 나의 이름을 잊어요. 당신께도 새로운 봄이 오겠죠. 시간이 걸려도 그대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날 떠올려 주면 안 되나요.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선발투수는 첫 번째 공을 던지고, 경기는 시작되고, 그렇게 또 야구는 진행된다. 이 흔들림없는 시간을 사랑하는 동시에 하루도 흔들려주지 않는 시간을 원망하지만, 어쨌든 삶은 야구공처럼 덜컹거리며 쉼 없이 굴러간다. 그래도 마지막엔 매일같이 내가 사랑했고 나의 자부심이 되어 나의 전부였던 모든 이들이 행복해지기를, 그리고 다시 이 팀을 회상할 때 기쁘게 기억해준다면 슬프기만 한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진짜 너무 슬프지만. 언젠간 둔해지겠지 나도, 십 년이 넘도록 무던하게 사람을 보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날에는 울지 않게 되겠지.
히어로즈의 불같지만 다정한 에이스, 팀을 위해 언제나 헌신하는 귀중한 팀메이트, 그리고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나의 영웅 에릭 요키시의 행복한 미래를 언제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