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영화

듄(Dune, 2021)

ZI0NY 2021. 11. 13. 10:31

사막을 좋아하시나요?

Dune (2021)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모래언덕과 황금빛 태양, 그리고 새파란 하늘만 존재하는 아득한 사막을 좋아하시나요? 듄은 사막은 닮아 있었다. 사막을 배경으로 했으니 어지간히 그렇겠구나 싶겠지만 그 이상으로 듄은 사막을 닮았다. 광막하고 공허하지만 장대하고 아름다우며 위압적인 사막을 닮아 있어서, 사막을 좋아한다면 이 영화도 좋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뭐 내 주변 관객들이나 지인들은 듄을 보고 잤지만... 아무튼 나는 이 텅 빈 영화를 좋아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떠오르는 영화였는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한낮의 선명한 황금빛 사막이라면 듄은 새벽 안개가 내리깔린 잿빛 사막과 같았다. 

공허한 화면을 가득 채워주는 건 배경음악이다. 왜 이 영화가 IMAX로 유명한 거지? 영화의 몰입감을 올려주는 건 음악 장치인데. 영화 러닝타임 내내 한 곳도 빠짐없이 배경음악이 완벽하게 들어맞으며 사람들을 이 사막으로 떠몬다. 반강제로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사막으로 들어온 폴(티모시 샬라메 역)처럼 관객들은 예언과 믿음과 종교가 살아 숨쉬는 사막에 빠진다. 단 한 군데에만 배경음악이 없었는데 그래서 더 몰입감이 있기도 했다! 머리가 아플정도로 배경음악을 깔고, 그 위에 또 배경음악을 한 겹 더 깔아서 텅 빈 한밤중의 사막에 길잡이별이 떠오르듯 이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아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막에는 별이 가르키는 길이 있듯이, 이 영화에도 분명한 운명과 예언이 방향을 가르킨다.

그리고 세상에 미중년이 귀한 줄 모르고 폴의 아빠를 죽였다. 이 씨발새끼들...

소중한 미중년 레토 공작

폴의 아빠인 아트레이데스 공작... 영화 설명에는 레토 공작으로 나온다. 그럼 이름이 레토 아트레이데스인가? 아무튼 이분 외에는 미중년이 없었는데 소중한 우리 공작님을 죽였다. 진짜 그다음으로 나온 사람들이 다 배나온 영감탱들뿐이다. 뭔 남작이고 황제고 칼쓰는애고 진짜 노답이다. 아라키스에 그 사막 원주민들..? 거기 대장님은 얼굴이 잘 안 나와서 기억 안나는데 아무튼 미중년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기억을 못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생긴 사람을 보고 기억을 안 할리가 없다. 

사실 티모시 샬라메도 딱히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다. 잘생긴지는 당연히 모르겠고 체격이 너무 작아서 좀 유약해보인다고 해야하나, 상대 배우가 너무 커보인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밸런스가 안 맞는 느낌이라 영화에서 보기가 꽤나 어색한데, 이 영화에서는 한참 덩치 큰 사람들과만 투샷을 잡혔고, 사막에서도 엄마와 있거나 혼자 있는 것 위주로 나와서 그래도 괜찮았다. 근데 역시 체격이 작은게 잘 어울렸다고 느낀 건 거의 막판에 프레멘들이랑 만났을 때였는데, 확 다른 체격의 다른 인상인 샬라메가 들어가니까 이방인이라는 괴리감이 느껴졌다. 선 굵고 색 진한 인간들 사이에서 하얗고 얇은 인간이라니 캐스팅 괜찮았다.

아무튼 다시 보고 싶기도 한데, 근처 상영관에 시간대가 안 맞아서 못 보고 있다. 아득하니 아름다운 사막과 닮은 영화, 광활하고 장대해서 아름답지만 그만큼 황량하고 가혹한 땅에 찾아온 운명과 별같은 영화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유치환의 생명의 서를 닮은 느낌이 드는... 그래서 마지막은 유치환의 생명의 서로 끝맺는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 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灼熱)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