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봤다. 오펜하이머. 한 다섯번? 여덟 번은 본 것 같다;; 열번은 안 되었을껄 아마도. 개봉하면 꼭 보는 영화감독을 고르자면 조성희, 박찬욱, 최동훈,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사실 이 사람들의 영화 말고는 영화를 거의 안 본다. 그래서 당연히 놀란의 영화가 개봉했으니 당연히 보러갔다.
오펜하이머는 사회윤리나 정치윤리, 혹은 연구윤리같은 과목에서 스르륵 언급되곤 한다. 하이젠베르크, 텔러와 함께. 그래서 놀랍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안의 대부분의 인물을 내가 알고있었고, 뭐 그래서 더 쉬웠던 것 같다. 심지어 텔러는 등장하자마자 텔러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텔러라고 해서, 캐스팅에 기절할 뻔 했다. 원자폭탄의 탄생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그것이 오펜하이머의 삶의 한중간을 관통하기 때문에 영화의 중심에 선 것이지 과학 자체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점은 아니다. 연구와 윤리가 교차되는 지점, 그리고 인간들의 욕망, 정치적 목표, 20세기 중후반의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맹국의 관계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래서 과학보다는 인문학에 가까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과 원자폭탄에 대한 영화나 책을 보면, 미국으로 인해 불행하게도 원자폭탄을 맞은 가여운 일본인을 조명하거나 세계의 악의 축이었던 일본을 혼내준 대 미국 연방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선명하지 않더라도 <탑건>처럼 국가나 군대의 우월성을 은연중에 뽐내게 되는데 <오펜하이머>는 애초에 미국과 일본 양 측에 다 관심이 없다. 미국은 오펜하이머를 원자폭탄의 개발자로 추앙하다가 그를 추락시킨 것 뿐이고, 일본은 당연히 비중도 없지만 언급된 건 오펜하이머가 일본에서 폭탄에 맞아서 얼마나 죽었는가를 떠올릴때뿐이다. 어떠한 나라가 아니라 그냥 '국가라는 존재'가 한 개인에게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가에 집중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생각한 것은 대의와 그 대의가 가져올 도덕성의 붕괴다. 이 고민을 하는 사람이 과학자, 그것도 원자폭탄이라는 거대한 죽음의 신을 만들어낸 사람이라는 점에서 과학자의 연구윤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공리에 대해 계산한다면, 나치독일과 일본제국이 죽일 사람들의 수와 원자폭탄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뜨렸을때 죽을 사람들의 수를 비교하고, 그로 인해 자유와 평화를 얻어낼 사람들의 행복의 총량에서 죽은 사람들의 불행을 총량을 빼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진다고 한들 결국 죄책감을 다시 안고 살아가야하는것은 대의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도덕성을 포기한 인간이며, 그로 인해 죽어버린 사람들이 반-나치인지 친-나치인지 혹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이지조차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그렇게 생겨난 폭탄이 일회성이 아니라 이후 전쟁에 계속 쓰이고 계속 사람을 죽이는 등 파생되는 변수와 문제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오펜하이머는 끊임없이 자책하고, 더이상 폭탄이 쓰이지 않는 방향으로 발언하고, 자신의 창조품을 불행의 씨앗으로 여겼다. 차라리 수소폭탄을 만든 텔러처럼 자신의 폭탄이 사람을 죽이는것에 대하여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국가를 위해 노력했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다면 그는 더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도 있었고, 더 대단한 위치에 올라설수도 있었다고 수십 번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전체주의나 군국주의에 빠지지 않았고 그건 개인의 불행이 되었다. 이 오펜하이머의 불행은 영화에서 일본에 폭탄을 떨어뜨린 후, 농구장에서 폭탄의 성공에 대한 연설을 하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방사선에 노출되어 죽어가는 모습으로 화면에 담기고, 장면은 거대한 빛에 쌓이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는 등의 장면으로 묘사된다. 보안 등급에 대해 말도안되는 재판을 받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국가가 나서서 배신자로 낙인찍는다. 그를 숭배하는 자리에서도 계속해서 죽어가는 인간들을 떠올릴수밖에 없는 불행이며, 남들에 의해 끌어올려진 자리에서 다시 바닥으로 내쳐지는 불행이며, 그러면서도 자신이 죄를 짊어져야한다고 믿으며 그 부당함을 받아들이는 불행이다. 어쨌든 사람이 이러면 정신병이 온다. 오펜하이머가 힌두교를 믿고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3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인간들의 욕망이 교차한다. 공산주의자들의 국가를 변화시키고 싶은 욕망, 개인으로 행복하고 싶은 욕망,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보다 연구자로 살고 싶은 욕망, 폭탄과 함께 국제관계에서 우위에 서고싶은 욕망, 오직 국가의 안녕을 바라는 욕망, 연구에 대한 욕망, 그리고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고 안식을 찾고 싶은 욕망까지. 이들은 그래서 서로를 끊임없이 이용하고, 공격하고, 협력하고, 배신하길 반복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이런 욕망이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순간이 바로 원자폭탄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거대한 죽음의 탄생이 성공하는 그 순간에 영화는 오히려 평화와 정적을 얻는다. 마치 소원을 이뤄줄 수 있는 마법구슬처럼, 원자폭탄은 빛난다. 물론 실험의 성공과 함께 다시 새로운 욕망이 자라나지만, 일단은 모두가 소강상태로 들어선다.
원자폭탄과 함께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국이었던 소비에트 연방과 미 연방이 갈라지면서 냉전이 도래한다. 영화 중간중간에도 나오지만, 사실상 나치의 상대편에 섰을 뿐이지 둘은 동맹보다는 경쟁국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에서 국가의 관계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는 것처럼, 나치(친-나치)와 반-나치로 나뉘어졌던 정치상황에서 히틀러의 자살로 나치가 실각하고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제국이 패망하며 당연히 반-나치세력이 분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애초에 미국정부는 당연히 예측하고있었으므로 로스앨러모스에서는 나치보다 먼저, 그리고 소련보다도 먼저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원자폭탄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무한한 분열, 그리고 그로 인한 무한한 죽음까지도 (그들이 동맹국일지라도)그들에게 유출되면 먼저 폭탄을 만들 수 있는 단초가 될까봐 연구내용을 공유하지 않으면서말이다.
오펜하이머의 로스앨러모스를 생각하곤 한다. 말을 달릴 수 있는 추억의 공간이면서 안식처이자 휴식처였던 곳이 폭탄제조를 위한 비밀기지가 되면서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생각한다. 상당히 영화적으로 이 묘사가 와닿았기 때문인데, 폭탄 개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로스앨러모스와 오펜하이머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모든 기지를 해제하고 연구를 끝내자고 말하는 오펜하이머와 여기서는 계속 폭탄 연구를 할 거라고 말하는 군인의 대치는 로스앨러모스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리자는 내용인 동시에 오펜하이머 스스로가 더이상 폭탄으로 국가간의 치킨게임을 이어가기 싫어했다는 점과 미국은 끊임없이 폭탄을 개발해서 세계정치에서 항상 우위를 차지하고 싶었던 점과 일치한다. 그렇다면 로스앨러모스를 폭탄 개발 기지로 사용하기로 결정할 때에 전쟁이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오펜하이머는 정말 순수하게 믿었던 걸까? 사람들의 손에 원자폭탄이라는 이름의 죽음이 쥐어지고 나면 진짜로 인간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고 신뢰할 수 있었던 걸까? 그가 평범하게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연구를 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세계대전과 냉전이 있던 시대의 천재는 어떤 방식으로든 결코 평화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분야가 과학이 아니었더라도. 오펜하이머는 정치학이나 인문학쪽이 맞아보인다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이쪽으로 가면 빨갱이로 몰려서 죽는 건 순식간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주고, 신에게 징벌받았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프로메테우스와는 다르다. 그는 신에게 징벌받은것이 아니라 폭탄을 쥐어준 인간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징벌받았다. 영화 말미의 아인슈타인의 말을 일부 따르면, 결국 오펜하이머는 숭배받았다가 진창에 쳐박혔다가 그리고 다시 끌어올려져 진창에 집어넣었던 사람들이 다시 쥐어준 명예와 함께 조용히 살기를 강요받았다. 원자폭탄을 만든 죄로 신에게서 벌을 내렸다면,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군부, 국가 등 그를 지지하고 떠밀고 찬동했던 수많은 이들이 함께 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인간이 '도덕성'이라는 여론을 의식하여 보여주기식으로 누군가를 떠밀기 위해 내리는 벌이었고, 그래서 가장 도덕적으로 고통받던 인간이 자신이 죄인이라고 스스로 받아들일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오펜하이머를 보니 오랜만에 쇼펜하우어의 책이 읽고싶어졌다. 역시 인생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는 칸트나 쇼펜하우어가 재밌는데, 책장 지금 뒤져보니 의표세는 버린 것 같다..;; 다시 사야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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