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9

《여성작가 SF 단편모음집》

나는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보는 사람이다. 같은 작품을 다시 본다고 지루해하지도 못하고, 등장인물들이 나타나는 첫 장면부터 울어 버리는 사람이다. 《인터스텔라》에서 5차원의 책장 뒤에 갇힌 쿠퍼 씨처럼,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고 싹싹 빌면서 엉엉 울곤 한다. 《인터스텔라》에서는 보통 처음 머피가 바람 부는 날 자신의 방에서 모스 부호를 발견했을 때부터 운다. 이정도면 거의 미친놈 아닐지.. 《승리호》에서는 꽃님이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울기 시작한다. 뭐 이런 식으로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이 울어서 표지만 봐도, 포스터만 봐도 눈물이 나는 작품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여성작가 SF 단편모음집》이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 수록된 박애진의 「토요일」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너무 슬프다.「토요일」을 ..

일상/책 2024.11.25

박애진,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이 책은 쓸까말까 생각이 많았다. 왜냐하면 내가 앞서 쓴 리뷰들과 대부분 겹치기 때문에..「낙원」은 《U, ROBOT》의 「파라다이스」이고, 「토요일」은 거의 마지막으로 쓰려고 순서를 잡아둔 《여성작가SF단편모음집》에 수록되어 있다. 「우주를 건너온 사랑」은 《일상 탈출 구역》에 수록되어 있으며, 「깊고 푸른」은 《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에, 「4퍼센트」는 《우리의 신호가 닿지 않는 곳으로》에 있다. 그럼 단 세 편이 남는데, 바로 「호수의 여신」, 「착한 아이 피노」, 이 책의 대제목이기도 한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다. 그래서 이 책을 빼고 《바람결에 흩날리고 강을 따라 떠도는》과 《지우전》의 순서를 가지려고 했으나... 슬프게도 《지우전》을 못 샀다.... 그래서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하..

일상/책 2024.11.22

조선 스팀펑크 연작선 《기기인 도로》

드디어 왔다. 조선스팀펑크! 《기기인 도로》는 조선시대에 증기기관이 있었다면... 이라는 if에서 시작되는 단편 연작선이다. 읽을수록 도대체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기도 하지만 말은 또 다 되는 이상한 재미가 있다. 역사랑 다른 것은 하나도 없는데, 기묘사화에 증기기관이 얽혀 있질 않나, 증기마와 증기마차를 타고 이성계가 전쟁엘 나가지 않나, 홍국영이 로봇이질 않나, 하나같이 역사와 다르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맨 첫번째로 수록된 김이환의 「증기사화」를 읽으며 훈구와 사림의 대립과 그로 인한 사화, 그리고 조광조와 주초위왕(이 소설에서는 초승심위왕이다) 사건을 사관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이것에 촘촘하게 증기기술이 엮어 둔 것이 기묘했다. 말이 되는데 말이 안 되는 이상한 이야기를 읽은 느낌이 들어서 더 ..

일상/책 2024.11.19

전래동화 앤솔러지 《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

어제는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설화나 민담 속에 나오는 이들이 현실에서 사는 모습을 읽었다면, 오늘은 동화 속의 나오는 이들이 미래에서 사는 모습을 읽을 차례다. 기계 기술자인 심청이는 동화처럼 인당수로 들어가고, 안드로이드 로봇은 용왕을 위해 클론의 간을 가지러 가며, 오누이가 아닌 두 아이는 줄을 타고 태양의 비밀 가까이 다가간다. 장화를 찾아서 우주로 나서는 홍련이 있으며, 흥부처럼 행동하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과학적 믿음이 있는 사회가 있다.  다섯 편의 단편 중 박애진의 「깊고 푸른」은 심청이 이야기다. 눈이 먼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의 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인당수에 들어가야 한다. 캐릭터성이 오직 심성이 고운 효녀로만 강조되었던 전래동화 속 심청이와 다르게, 「깊고 푸른」의 청이는 기계를 잘..

일상/책 2024.11.17

SF 작가의 고전 SF 오마주 《책에서 나오다》

어제 아서 코난 도일의 《마라코트 심해》를 읽었다면 오늘은 그의 오마주인 「미싱 링크」를 읽을 차례다. 《책에서 나오다》에는 「미싱 링크」를 포함한 7개의 오마주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마라코트 심해》와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 중 몇 권 뿐이라서 아직  《책에서 나오다》를 다 읽진 않았다. 오마주를 먼저 읽으면 원작? 고전SF를 읽을 때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놔두고 있기 때문이다. 박애진의 「미싱 링크」는 아서 코난 도일의 《마라코트 심해》와 반대다. 마라코트 박사가 심해를 탐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내려갔다면, 설여울 박사는 지상의 공기층과 대륙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위로 올라간다. 여기서 내가 가진 의문은 지구의 육지 ..

일상/책 2024.11.14

아서 코난 도일, 《마라코트 심해》

박애진 작가의 책을 줄줄이 쓰다가 왜 아서 코난 도일로 왔는가 하면... 그 이유는 내일 밝혀집니다. 아서 코난 도일이 누구냐 하면 셜록홈즈의 그 코난 도일이 맞다. 그는 꽤나 SF소설을 많이 썼는데, 이 소설들은 출간된지 100년이 지나 고전 SF소설이 되었다. 《마라코트 심해》도 그 중 하나다. 1927년, 데카르트와 칸트를 위시한 이성주의가 유럽 철학의 중요한 흐름이 된 지 짧게는 100년에서 길게는 200년이 넘은 시점이다. 이성과 논리, 과학이 지배하던 세계에서 그 과학을 기반으로 한 픽션 소설이 쓰이기 시작한 시기다. 거기에 제국주의의 팽창적 행보로 미지의 땅을 탐사해서 알아내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식민지라는 거대한 부를 가져다주었으며, 아문센과 스콧의 극점 탐사와 같이 개인의 연구와 영달에서 ..

일상/책 2024.11.13

한국 SF 단편 10선, 《U, ROBOT》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쓸 독후감은 로봇과 로켓이다. SF라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매우 좋아하는데, 로봇이라는 존재가 주는 인간성과 비인간성은 인간과 이질적이면서도 꽤나 동질적이기 때문이다. 로봇이라서 할 수 있는 비인간성으로 설명되는 잔혹함, 공감 결여, 혹은 맹목적인 목표지향성이 소설에 등장한 로봇에서 드러날 때가 기괴해서 인상에 깊게 남는 동시에 로봇이지만 인간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며 배우거나 혹은 공학적으로 탑재된 인간성, 즉 다른 존재를 보호하려는 행동이나 자기희생이 드러날 때 '인간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하지만 지금 독후감을 쓸 박애진의 「파라다이스」에는 특별히 로봇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인공지능으로 스스로 움직..

일상/책 2024.11.10

SF 일상 단편 앤솔러지, 《일상 탈출 구역》

앞서 독후감을 남겼던 《일상 감시 구역》의 다음 단편집이다. 같은 세계관을 쓴 작가도 있고, 앞 편과 다른 이야기를 쓴 작가도 있다. 이번에도 중점적으로 쓸 단편은 박애진의 「우주를 건너온 사랑」이다. 이 이야기는 「목격자」와 세계관을 공유한다. 다만, 「우주를 건너온 사랑」이 훨씬 더 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목격자」에서 파인딩 시아에 타고 있던 네 클론 아이들 중 하나인 소피아가 더 성장해서 관광 행성인 험다에 온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전에는 클론의 제작이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우주를 건너온 사랑」에서는 클론이 차별받을지언정 꽤 많은 비율을 행성에서 차지하고 여러 사건을 총괄하던 페가수스 우주 정거장이 폐가전이라는 이름으로 무시받고 있는 등 배경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일상/책 2024.11.08

SF 일상 단편 앤솔러지, 《일상 감시 구역》

오블완 챌린지 첫번째 책은 김동식, 박애진, 김이환, 정명섭의 단편 모음집 《일상 감시 구역》이다. 그 중 박애진의 「목격자」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고립된 곳에서 적은 인원이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발생한 문제'를 그리고 있다. 일종의 밀실추리물인데, 이 공간 자체도 고립되어있지만 사실상 독자가 심리적으로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는 '현경'이라는 인물 단 한 명의 시점에서만 진행되고 있다는 답답함과, 현경이라는 인물 자체가 이 사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독후감을 남겼던 《사장을 죽이고 싶나》도 밀실추리물이었는데, 이 책은 공간 자체가 밀실이었을 뿐 시점은 위바이통을 중심으로 본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기에 정보가 부족하면 부족했지 잘못된 것은 없었던 것에 비해..

일상/책 2024.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