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쓸 독후감은 로봇과 로켓이다. SF라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매우 좋아하는데, 로봇이라는 존재가 주는 인간성과 비인간성은 인간과 이질적이면서도 꽤나 동질적이기 때문이다. 로봇이라서 할 수 있는 비인간성으로 설명되는 잔혹함, 공감 결여, 혹은 맹목적인 목표지향성이 소설에 등장한 로봇에서 드러날 때가 기괴해서 인상에 깊게 남는 동시에 로봇이지만 인간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며 배우거나 혹은 공학적으로 탑재된 인간성, 즉 다른 존재를 보호하려는 행동이나 자기희생이 드러날 때 '인간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하지만 지금 독후감을 쓸 박애진의 「파라다이스」에는 특별히 로봇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인공지능으로 스스로 움직이는 인간(혹은 비인간동물)형태의 기계가 등장하지 않는다. 기계 로봇을 동작시켜서 일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설의 내용이 모두 주인공의 상념과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내용을 파악하기는 꽤 어려웠다. 단지 주인공의 감정을 파악할 뿐이다.
지구가 멸망하고 인류는 달에서 살고 있다. 지구환경보존협회에서 조종사로 일하면 다시 지구로 돌아가 문화재나 미술품을 모아와서 달에 사는 부자에게 팔아 큰 돈을 벌 수 있다. 주인공은 지구로 오기 위해 지구환경보존협회에 가입했는데, 주요한 화자의 독백이 연인 '민'과의 불안정한 관계임을 통해 이것이 주인공이 지구로 도망친 원인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 이외에도 주변의 관계에서 오는 자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느낌이 있는 것도 같다. 나도 쓰면서도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감이 잘 잡히지는 않는다... 현실도피성으로 지구행을 택했다는 설명이 가장 알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내용을 쓰면서 나는 왜 이 단편의 제목이 「파라다이스」인지 문득 눈치채고 말았다. 파라다이스, 즉 낙원 아닌가. 심지어 이후에 출간된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에는 동일한 내용이 제목만 「낙원」으로 바뀌어 수록되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만화 베르세르크)'는 문장을 내포하고 있는 제목이 아닐까?
이 단편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주인공은 계약기간이 끝나 재계약을 택하지 않고 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앞두는데, 연인과 관계있던 물건을 지구에 묻어두고(폐기하지 않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 내용이 여러가지의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과 함께 도망쳤으나 결국 다시 현실로 돌아가며 불안정한 감정들을 어느 정도 정리해두고 떠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앞서 생각했던 것들의 결론을 낸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 존경하는 조종사를 말하지 못했던 것, 지구로 가는 이유를 말하지 못했던 것처럼 용기내지 못하고 흐지부지했던 행동들을 후회하듯(이게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혹은 이후에는 다르게 행동할거라는 의지를 보여주듯 마지막으로 자신의 의지를 담아 행동하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엄청나게 로봇로봇한 이야기... 《모래도시 속 인형들 2》의 「힐다, 그리고 100만 가지 알고리즘들」같은 내용을 기대했는데 인간의 생각과 심리에 대한 이야기라서 작게 실망하긴 했다. 그렇지만 내용에 실망했단 말은 아니다. 이런 인간의 고민 이야기는 재밌으니까. 사실 2024년이나 2124년이나 인간이 생각하는 고민거리는 그게 그거일거라고 생각한다. 1800년대에 쓰여진 책에서도 인간들이 하는 고민은 지금이랑 별 차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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