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책

SF 일상 단편 앤솔러지, 《일상 감시 구역》

ZI0NY 2024. 11. 7. 16:41

오블완 챌린지 첫번째 책은 김동식, 박애진, 김이환, 정명섭의 단편 모음집 《일상 감시 구역》이다. 그 중 박애진의 「목격자」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고립된 곳에서 적은 인원이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발생한 문제'를 그리고 있다. 일종의 밀실추리물인데, 이 공간 자체도 고립되어있지만 사실상 독자가 심리적으로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는 '현경'이라는 인물 단 한 명의 시점에서만 진행되고 있다는 답답함과, 현경이라는 인물 자체가 이 사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독후감을 남겼던 《사장을 죽이고 싶나》도 밀실추리물이었는데, 이 책은 공간 자체가 밀실이었을 뿐 시점은 위바이통을 중심으로 본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기에 정보가 부족하면 부족했지 잘못된 것은 없었던 것에 비해 「목격자」는 시점의 주인인 현경을 속이려는 진술이 주변에서 반복되어 어떤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 확신하기 힘들다. 이런 전개가 더욱더 공간을 밀실처럼, 현경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 더 독자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 책에서는 크게 두 가지 줄기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 가지는 파인딩 시아에 타고 있는 청소년 정도의 발달과정에 있는 클론들과 이들의 보호자인 토마스의 관계이다. 토마스는 의도적으로 두 아이는 편애하는 식으로 네 명의 아이들과 건강하지 못한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 다른 주요 내용은 클론이라는 존재에 대한 현경 스스로의 고민이다. 어떠한 목표를 위해 생산된 클론에게, 그 목표가 자신의 의지 없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불안과 고민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 이야기는 밀실추리물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앙투완을 공격한(혹은 공격하려 한)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이 아이들, 특히 현경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토마스는 앙투완과 샬롯을 편애했고, 소피아에게는 무난했으며, 현경은 강하게 제재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사건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서도 그랬다. 페가수스 우주 정거장에 도착해서 각자 어떻게 할지 선택하게 되었을 때, 앙투완은 토마스를 보호자로 선택하며 다른 아이들에게 적대적으로 대했다. 똑같이 편애를 받았던 샬롯은 토마스의 애정을 갈구했던 것을 낯설어하며 다를 보호자를 선택하기를 결정했다. 특별히 불이익을 받지는 않았지만 특별한 애정을 받지도 못했던 소피아는 '그래도 토마스만한 보호자를 찾을수는 없을 것'이라고 하며 그의 지금까지의 행동을 정당화해주며 그를 보호자로 택한다. 현경은 당연히 계속해서 자신을 적대했던 토마스를 보호자로 택하지 않았지만, 페가수스 우주 정거장에서 만난 쉐라즈와 같은 다른 어른들에게서 토마스의 모습을 발견해낸다. 그리고 소설은 끝나지만 나는 현경이 생각한 바와 같이, 결국 이 네 명의 아이들은 결코 서로를 신뢰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앙투완은 보호자인 토마스에게 더 집착하여 소피아를 경계하게 되어 둘의 사이도 좋지 못할 것이며, 현경이 언급했듯이 토마스는 앙투완과 소피아를 샬롯, 현경과 접촉하지 못하게 막을 것이며, 현경은 자신에 대해 불리한 진술을 한 현경을 꺼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아를 탐사하겠다는 하나의 목표를 통해 생산된 클론들은 결국 아주 완전히 다른 인간들임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클론이라는 존재,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하는 현경의 생각과 심리를 계속해서 묘사하는데 나는 이 내용이 사실 청소년기의 인간이 하는 생각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청소년 소설이기도 하다.) 사이가 좋지 않았더래도 파인딩 시아에 타고 있던 네 아이들은 서로가 같은 클론이라는 동지의식이라던가, 같은 구성원으로써의 안정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이들 사이의 분쟁이 이들을 분리시킬 위험에 처했을 때, 토마스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행동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피아가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그를 보호자로 선택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너희는 아직 어려서 모르는 걸 나는 알고 있다는 바로 그 표정' 을 쉐나즈가 짓고 있었다는 현경의 묘사(그리고 이 표정은 토마스가 자주 짓던 얼굴이라는 묘사)를 따라가면 현경은 결국 페가수스 우주 정거장의 어른들과도 거리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로에게 누구보다 큰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를 궁금해하기도 하지만 아주 빠른 시일내에 보호자의 애정때문에 서로를 적대하여 공격하는 쪽으로 돌변하는 것, 그리고 '어른'에 대한 거부감까지 모두 평범한 청소년같았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앙투완과 소피아의 선택이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피아의 선택이 말이다. 그것이 그리 좋지 못한 것임을 알면서도 이미 아는 길을 택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느낀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그럼해도 이해가 간다. 모든게 불안정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동질감(같은 인간이라는)도 갖지 못하는 아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어디 있겠는가. 토마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챈 샬롯이 대단할 뿐이다.

이렇게 「목격자」는 끝을 맺지만, 《일상 감시 구역》에는 불신하는 인간들의 「살인게임」, 무조건적인 규칙이 지배하는 「친구와 싸우지 맙시다」, 현실에 있는 가정용 로봇들로 하는 공상인  「코드제로 알파」가 수록되어 있다. 다른 단편들은 또 다른 수많은 SF일상들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야기의 향기에 흠뻑 취해서 이야기에 기꺼이 빠져들었는데, 이 책을 읽을 또 다른 사람도 그렇게  즐거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