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진 작가의 책을 줄줄이 쓰다가 왜 아서 코난 도일로 왔는가 하면... 그 이유는 내일 밝혀집니다. 아서 코난 도일이 누구냐 하면 셜록홈즈의 그 코난 도일이 맞다. 그는 꽤나 SF소설을 많이 썼는데, 이 소설들은 출간된지 100년이 지나 고전 SF소설이 되었다. 《마라코트 심해》도 그 중 하나다. 1927년, 데카르트와 칸트를 위시한 이성주의가 유럽 철학의 중요한 흐름이 된 지 짧게는 100년에서 길게는 200년이 넘은 시점이다. 이성과 논리, 과학이 지배하던 세계에서 그 과학을 기반으로 한 픽션 소설이 쓰이기 시작한 시기다. 거기에 제국주의의 팽창적 행보로 미지의 땅을 탐사해서 알아내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식민지라는 거대한 부를 가져다주었으며, 아문센과 스콧의 극점 탐사와 같이 개인의 연구와 영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시대에 《마라코트 심해》는 쓰여졌다.
지금 읽으면 사실 아주 평범한 미지의 심해 탐사 SF다. 특별하게 독특한 점도 없고, 반전도 없으며, 평범하게 끝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이 100년 전에 쓰여졌음을 다시 생각하면 이 책 이후에 나온 모든 심해 SF는 이 책에서 가지를 드리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지의 땅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들고, 양 극점을 탐사하고, 비행하고, 그리고 사람의 상상력은 심해를 탐사하는 것에 이른다.
내용은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많은 책을 읽었으며, 고전 소설은 수많은 소설들의 모티프가 되었기 때문이다. 심해를 탐사하러 들어갔고, 들어가는 길에 사고로 위험에 처한다. 위험에서 주인공 일행을 구하는 것은 정체불명의 사람들인데, 알고보니 이들은 고대 그리스어를 쓰는 고대국가 아틀란티스의 오래된 주민들이었다. 라는 내용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내용들이 섞이고 섞이고 섞여 있다. 한 때 수없이 많이 쓰인 소재가 아닌가! 전설의 도시 아틀란티스와 황금의 땅 엘도라도. 유럽이라면 아틀란티스의 비밀이 있고, 아메리카 대륙이라면 엘도라도의 비밀이 있는 것이 판타지 모험 소설의 클리셰라는 걸 이미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조금,.,. 사실많이지루했다... 코난도일씨 죄송합니다. 이어서 내용은 또다시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 미지의 세계에서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람과 함께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오고, 연구를 발표하고, 화제의 중심이 되지만 다시 탐사하러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곳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 안전해서라거나, 돌아갈 방법이 없거나, 돌아가는 것이 더 위험하거나 하는 여러 이유로 주인공 일행은 영국에 그대로 남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렇게 대략만 봐도 상상이 가는 이야기를 (심지어 등장인물의 성격도 예측가능하다) 왜 읽는가 하면, 앞서서 말했듯이 이게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다듬어지지도 더 새롭지도 않은 날것의 맨 처음의, 오래 전의 심해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2024년의 심해와 1927년의 심해는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르다. 최신의 심해 이야기 하면,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를 꼽을 수 있는데 2010년대 이후의 소설답게, 심해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인간들의 갈등과 화합 등이 주요한 문제로 떠오르며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심해엔 무엇이 있는가, 심해 아틀란티스 문명의 인간들은 무엇을 이룩했는가가 주 관심사였던 《마라코트 심해》와 보고 있는 시선이 전혀 다르다.
이건 감명깊었다기보다 재밌어서 가져온 문장인데, 책에 인물의 대사로 아문센과 스콧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문센은 1911년에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고, 1926년에는 북극점 위를 비행했다. 1927년에 이 소설이 출간되었으니 그동안 코난 도일은 실시간으로 소설을 집필하며 아문센의 소식을 보고 있었을테니 이런 대사가 책 안에 쓰여 있을 것이다. 그만큼 도일에게 이 뉴스는 정말로 아주 큰 소식이었겠구나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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