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책

SF 작가의 고전 SF 오마주 《책에서 나오다》

ZI0NY 2024. 11. 14. 18:49

어제 아서 코난 도일의 《마라코트 심해》를 읽었다면 오늘은 그의 오마주인 「미싱 링크」를 읽을 차례다. 《책에서 나오다》에는 「미싱 링크」를 포함한 7개의 오마주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마라코트 심해》와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 중 몇 권 뿐이라서 아직  《책에서 나오다》를 다 읽진 않았다. 오마주를 먼저 읽으면 원작? 고전SF를 읽을 때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놔두고 있기 때문이다.

 

박애진의 「미싱 링크」는 아서 코난 도일의 《마라코트 심해》와 반대다. 마라코트 박사가 심해를 탐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내려갔다면, 설여울 박사는 지상의 공기층과 대륙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위로 올라간다. 여기서 내가 가진 의문은 지구의 육지 비율은 30%정도뿐인데 과연 설여울 박사는 대륙을 찾아낼 수 있나? 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못 찾긴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SF속에서 현실적인 부분 중 하나다.

또다른 현실은 어디 있냐 하면, 설여울 박사 일행이 공기층과 가까운 지점에 있는 또 다른 돔에 도착했을 때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부족한 자원을 아껴 쓰던 심해의 돔과는 사뭇 다르게 그로부터 2000미터정도 올라간 곳에 있던 돔은 자원이 여유로웠고 자원을 낭비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재미를 위해 다른 생명을 학살하는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인간이란  다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여유가 생기면 더 쌓고, 더 쌓고 또 쌓아서 남보다 앞서야 하고, 자신이 올라서기가 어렵다면 타인을 찍어 눌러서 아래로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존재 말이다. 상위 돔에서는 음식이 남아서 버릴 뿐 아니라 남겨가며 먹는 것이 미덕일 정도인데 하위 돔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는 건, 현재 인류가 살고 있는 이 대륙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어느 나라는 풍요롭고 어느 나라는 굶어 죽는다. 나라로 범위를 넓히지 않아도 누군가가 음식을 버릴 동안, 누군가는 아끼고 아껴서 먹다가 굶는다. 소설은 당연히 현실을 비추고 있다. 

 

중간 돔의 지배층이 두려워하는건 자신의 계급이 뒤집히는 것이다. 그래서 설여울 박사 일행이 자신의 돔으로 내려가 정복하기 위해 다시 올라올까봐 두려워하며, 대통령의 딸이 설여울 박사 일행을 몰래 풀어준 정황이 있더라도 쉬쉬한다. 참 현실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덕분에 설여울 박사 일행은 공기층까지 올라가고, 망망대해에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역시나 내 우려대로 육지는 없었고, 일행들은 다시 심해로 내려가는 결정을 내리는 데에서 소설은 끝난다.

허망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한 결말이지만 사실 육지 인간들에게 해저돔 인간들은 흥미거리 내지 실험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해저의 돔에서 산다는 동질감마저 없는 거의 완전히 다른 존재가 얼마나 그들에게 긍정적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지상 인간을 만나지 않고 내려가는게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테다. 물론 설여울 박사는 그렇게 되더라도 또 다른 생명과 다른 존재를 만나고 싶어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