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과거로부터 전해지는 설화나 민담 속에 나오는 이들이 현실에서 사는 모습을 읽었다면, 오늘은 동화 속의 나오는 이들이 미래에서 사는 모습을 읽을 차례다. 기계 기술자인 심청이는 동화처럼 인당수로 들어가고, 안드로이드 로봇은 용왕을 위해 클론의 간을 가지러 가며, 오누이가 아닌 두 아이는 줄을 타고 태양의 비밀 가까이 다가간다. 장화를 찾아서 우주로 나서는 홍련이 있으며, 흥부처럼 행동하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과학적 믿음이 있는 사회가 있다.
다섯 편의 단편 중 박애진의 「깊고 푸른」은 심청이 이야기다. 눈이 먼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의 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인당수에 들어가야 한다. 캐릭터성이 오직 심성이 고운 효녀로만 강조되었던 전래동화 속 심청이와 다르게, 「깊고 푸른」의 청이는 기계를 잘 만지는 기술자고, 호기심이 많고, 타인을 돕고, 아버지를 아끼고, 담대한 인물이다. 고작 제 눈을 뜨겠다고 딸을 팔아넘기던 무능한 아버지였던 심학규도 비열하고 계산적으로 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말처럼 행동하지 못하고 딸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걸 주고 싶어하고 자신이 가진 힘을 다해서 주변인을 돕는 사람으로 다시 그려진다.
동화 속 심청이가 살던 시대에도 어린 처녀 여자애를 바닷물에 제물이랍시고 빠뜨려 죽이는 족속들이 있었는데, 시대 배경을 지구 종말 너머의 머나먼 미래로 옮겨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높은 자리로 올라가서 노동자를 착취하고, 착취에 핑계를 붙여서 결국 너희가 게으를 뿐이라고 가스라이팅한다. 1695년에 씌여진 《듄》이 우주선을 타고 행성을 오가는 과학 기술을 가진 시대이면서도 아주 구시대적인 황제나 공작이 그대로 있는 어느정도의 봉건 영주의 자치가 인정되는 전제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미래지만, 현대적인 노동착취가 책 속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소설은 어찌 되었건 현재에 쓰여졌기 때문에, 현재의 불행을 담을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지만 이럴 때마다 한번씩,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무작정 행복하기만 한 어떤 미래가 우리 앞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계 기술자인 청이와 그의 아버지는 무언가를 더 좋게 고쳐내면 정부 고위가 불법적인 개조를 핑계로 월급을 줄이고 세금을 늘리고 벌금을 부과한다. 그들은 밝은 조명등 아래에서 더 좋은 기술로 몸을 고쳐가며 살아가지만 마을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에 18시간을 노동하면서도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그리고 자신도 좋지 못한 환경에서 사는 주제에 (16시간 노동한다) 자신보다 하층민을 착취하며 사는 중간 계층의 한심함도 있다. 이 중간층을 마을 사람들이 싫어하는 장면에서 영화 《설국열차》의 누군가가 생각났는데 작가의 말에 진짜로 내가 생각한 인물이 적혀 있어서 재밌었다.
작가의 말을 읽으며 전래동화 속의 심청이를 생각했다. 「깊고 푸른」의 청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선명하게 묘사되지만 「심청전」의 청이의 생각은 잘 표현되지 않는다. 그 애는 그냥 자신을 포기해서 인당수에 빠지는 것을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목숨을 걸고 저 물에 빠졌다 나오는 도박을 해 본 건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이 희생해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겠다고 결심한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심청이는 아주 용감한 여자아이였다. 「심청전」을 쓴 사람은 그 애를 착하고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성품의 어린 여자애로 만들었지만, 심청이는 기꺼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쳐서 기적을 만들어내려 안간힘쓰는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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