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탭에 쓸지 여행탭에 쓸지 쪼금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래도 사진을 열심히 찍긴 찍었으니 사진탭에 쓴다. 일본은 이곳저곳 많이 다니고 여러번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간게 아마 2019년? 그때보다 카드 쓰기가 엄청 좋아져서 환전도 많이 안 하고 그냥 신용카드로 결제하면서 돌아다녔다. 처음 일본에 갈 때에는 지역 호환의 가능 여부에 대해 말이 많아서 지역별로 따로 뽑았는데 지금 궁금해서 찾아보니 스이카-이코카는 2008년부터 호환이 되었다고 한다. 근데 또 어디는 호환이 되고 안되고가 어쨌든 또 달라서 조금 헷갈리긴 한다. (대부분의 일본 도시들은 스이카나 이코카로 모두 교통편 이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갔다온 나라들의 교통카드를 한 장씩 사는데 일본만 도시별로 있다. 이번에는 잔액도 그냥 남겨 왔다. 언젠간 다시 가겠지라는 마음으로. 지금 만약 교통카드를 뽑는다면 스이카나 이코카를 구입하세요. 얘네가 호환이 가장 잘 되는 카드입니다. 하지만 파스모는 산리오 콜라보를 했으니 산리오를 좋아한다면 산리오샵에서 콜라보한 파스모를 살 수 있을지도
오랜만에, 그것도 자주 갔다고 길도 다 아는 오사카 도톤보리에 가게 되니까 뭔가 익숙한데 많이 바뀌어서 미묘했다. 글리코 다리 근처에 자주 가던 스키야키집도 망했고, 직원이 싸가지없던 수플레 팬케이크 가게도 망했고, 작은 술집도 망했다. 그래도 여전히 재밌는 사람들은 많이 있었고 명예일본인 노릇을 하는 한국인도 있고 시끄러운 관광객도 있고 버르장머리없는 젊은이도 있었다. 여러모로 여전한 동네...
가장 먼저 뭔 얘길 할까 생각했는데 역시 신세카이 얘길 가장 먼저 하는 게 강호의 도리 아닐까. 왜냐면 이번 일본여행에서 가장 가고싶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만화를 꼽자면 《크게 휘두르며(おおきく振りかぶって)》, 《후르츠바스켓(フルーツバスケット)》, 그리고 《20세기 소년(20世紀少年)》이다. 쓰고보니 교집합이 없네. 야구만화, 순정만화, 스릴러만화라니. 제일 열을 내며 읽었던 건 《메이저》였지만 그냥 메이저리그 도전하는데에서 끝났어야 아름다웠을텐데 결혼하고 자식도 낳아 놓고서는 또 도전 + 시련(부상) 이라는 포맷을 끝없이 가져가니까 그냥 가정을 방기하는 천하의 죽일놈이 되어서 고로를 점점 싫어하게 되어버려서 더이상 소년만화로 즐길 수가 없어져버렸다. 애초에 고로는 별로 좋아한 적 없고, 내 최애는 토시야였지만. 아니 오오후리도 다카야군을 가장 좋아했는데 내가 포수를 좋아했던건가? 아무튼간에 잠시 오타쿠스러운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자면 《20세기 소년》에서는 「친구」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던 날 도쿄에서 인간들을 죽이는데, 여기서 친구의 탑이었나 아니면 NHK의 송신탑이었나 아무튼 이걸 무너뜨리는 컷이 나온다. 이 피의 그믐날의 장면을 생각하면 항상 신세카이 전망대가 생각나서 꼭 가봐야겠다고 수십번은 더 결심했으나 항상 못 갔는데 드디어 지금에야 가봤다.
아니 지금 좀 많이 멘붕이 왔다. 다르게 생겼잖아?! 내가 본 건 뭐였지? 칸나가 자다 일어나서 「친구」의 병기 로봇이 다시 멸망을 가져오는 걸 보는 장면에서 신세카이와 닮은 탑이 무너졌던가? 역시 방송국의 송신탑이 무너지는 장면이었던가? 도저히 생각이 안 나니 다시 《20세기 소년》을 정주행해야겠다. 친구의 탑이 저렇게 괴랄한 모양이었다니 지금 상당히 충격적이다. 내 추억과 꿈과 소망은 도대체 뭐였을까. 하지만 그래도 신세카이에 간 건 좋은 선택이었다. 블로그 글을 쓴다고 검색하지 말 껄... 어차피 《20세기 소년》에서는 배경은 도쿄지만 만국박람회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는데, 애초에 만국박람회는 오사카에서 있었으니까 사실 내가 오사카 신세카이에서 《20세기 소년》을 느껴도 되는 게 맞다. 진짜 억지지만 맞다. 특히나 전망대 근처의 쓰텐가쿠 상점가가 90년대의 올드한 일본같아서 《20세기 소년》과 시공간 배경이 일치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벅차올랐다. 오타쿠의 특징이 시도때도없이 혼자 감동받고 벅차오르는 거라고는 하지만 차마 친구에게 "신세카이에서 무너지지 않은 쓰텐가쿠 전망대를 보니까 「친구」로부터 세계를 지켜냈다는 이상한 감상이 들어..." 라는 말을 하면 "으휴 이 씹떡아!!"라고 하며 웃어넘기는 수준을 지나쳐서 친구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칠 게 뻔해서, 그냥 조용히 혼자 벅차오르는 마음을 가지고만 있었다. 근데 정말로, 정말로 벅차올랐다. 칸나는 「친구」로부터 세계를 지켜냈고 21세기는 무사히 도래했어...
이런 오타쿠적 감상을 떼고 봐도 쓰텐가쿠는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압도적이게 남자 비율이 높은 동네. 특히 노인과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젊은이들만 가득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부촌이라기보단 빈촌에 가까운데 슬럼의 느낌은 아니고 번화가, 그중에서는 B급 번화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게임방 있고 낮술하고 뭔가 그런 저렴한 유흥 골목가. 다음에 또 가면 그만 벅차오르고 낮술을 마시면서 놀텐데 여자애들이랑은 못 갈 것 같은 느낌. 그러니까 여자친구랑 데이트온거같은 남자애들을 볼때마다 한숨나왔다. 지금 저 미소녀가 구두신은거 안보이냐고 이 자식아.
그리고 재밌었던 건 아무래도 사람들. 그냥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된 누군가하고 수다떠는건 꽤 재밌다. 재미있는 맥주공장 아저씨들도 있었고, 옆자리 야구메이트 아저씨도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코시엔 스사노오 신사에서 만난 야구부원들.
코시엔 스사노오 신사에서 오마모리를 사고 천천히 구경을 하고 있었다. 소원을 적는 판에는 한신 우승, XX고교 우승, OO고교 우승 이런 식으로 온갖 팀들의 우승에 대한 소원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다른 신사들이 가족 건강이나 연애에 대한 소원을 많이 비는것과 아주 상반된 모습. 우승 기도를 하고 야구장의 라이트를 뒤에 놓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마침 야구부원 둘이 걸어들어왔다. 나는 절대, 절대, 절대 이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야구부원들에게 혹시 기도하는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를 물어봤는데 흔쾌히 괜찮다고 했다!! 처음에 영어로 물어봤는데 전혀 못 알아듣는 눈치라 일본어로 다시 질문했더니 떨떠름하게 그래도 오케이해줬다. 제발 학생들에게 일반적인 수준의 중등교육은 제대로 제공되었으면 좋겠다. 사진을 찍고나서 야구장으로 들어갈지, 신사에 잠시 앉아있을지를 고민하고있는데 이 선수들이 쭈뼛대면서 말을 걸었다. ???? 국제고의 매니저냐고 물어봤는데 아마도 이번에 코시엔 진출한 클라크 국제고 아니었을까 아님 교토국제고라던가? 고맙다고 하고 나이를 까니까 놀랐다...ㅎ 그냥 한국 고교야구 팬이라서 우승 기도를 하러 왔다고만 했더니 우와아- 하는데 너무 고등학생이라, 아니 고등학생 맞지만, 기분이 되게 묘했다. 마에바시 상고 학생이고 경기에 나가지 못해서 코시엔을 보러 왔다고 해서 센바츠 탈락고교가 경기를 보러 왔다고 알아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날 제 2경기가 마에바시 상고의 경기라서 응원전을 하러 온 거였다. 응원하는 학교는 어떤지 물어봐서 봄에 4강에 올라갔다고, 그래서 마지막 대회에서는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바로 데키루!! 라고해서 진짜 눈물났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셋이서 손 모아서 전국제패 우승 간바레 예이~!까지 했다. ㅠㅠ귀여워. 그리고 오마모리를 구경하길래 갖고싶냐고 물어보니, 개인활동이 금지라서 돈이 없다하길래 사줬다. 나도 이 시점에서는 돈이 다 떨어져서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인출했는데, 고교 선수들이 오마모리가 갖고싶다는 말에 야빠 된 의리로 안 사줄 수 없지. 그리고 그렇게 헤어졌다. 아직도 이 때를 생각하면 설렌다. 마에바시 상고는 이번 코시엔에서 1회전에서 대패를 당하고 탈락했지만 그래도 내년, 아니면 후년에 이 선수들이 다시 뛰러 왔으면 좋겠어서 벌써부터 두근두근하다. 지금 또 다시 생각해보니 등번호가 28, 22면 3학년아닌가 졸업하는 거 아냐?!
그리고 계속 기억에 남을 맥주공장 아저씨들. 어쩌다보니 맥주공장 관람을 할 때 아저씨 30명 단체와 나 하나로 같이 하게되었다. 계속 한국어로 된 안내판을 제공해주려는 기린이치방 맥주공장 가이드님과 나한테 자꾸 일어로 말을 거는 관람객 아저씨들사이에서 정말 재미있었다.
맥주공장에 가는 걸 아주많이많이 좋아하는데, 지금까지 가본 곳은 (일본에서는) 아사히 하카타공장, 아사히 스이타공장이었다. 기린이찌방은 처음이라 아주 기대되었다. 역시나 아사히랑 다르게 보리 홉에 집중하는 느낌이 있었고, 난 애초에 아사히맥주를 돈주고 절대 안사먹는 쓰레기취급하고 이찌방은 꽤 좋아하기때문에 더 만족스러웠다.
키린이찌방 맥주투어 아저씨들이 자꾸 카노죠 카노죠~ 하면서 나한테 말 건 것도 웃긴데 내가 한국어 번역자료(투어 담당 직원분이 주셨다.)를 들고 있으니 "이 아가씨한테는 일본어가 아니라 영어로 말해야한다고!!" 하면서 아저씨들끼리 투닥거린것까지 웃겼다. 일본어도 괜찮습니다... 하고 머쓱하게 말하니까 아저씨들이 와하하하핫 웃어서 더 민망했다;; 심지어 내가 아저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하니까 아저씨는 싫으니 그냥 저기요(아노 스미마셍-)라고 부르라고 해서 진짜 많이 웃었다. 덕분에 맥주투어가 더더욱 재밌었다.
시음용 맥주 마실때도 재밌었는데, 내가 사진찍고 한번에 반잔을 그냥 마셨더니 또 이 아저씨들이 대단하다는 얘기를 시작으로 놀리기 시작했다. 안주로 과자가 제공되었는데, 과자를 안 먹으니 또 왜 안먹냐고 물어보고. 샘플러 향 200번은 맡고 먹으니 뭐가 제일 맛있냐고 물어보고... 그냥 아저씨들의 아이돌이 된 기분이었다. 결국 이 투어 무리에서 모든 술을 다 마신 건 나밖에 없었는데, 아저씨들이 이것도 또 아저씨들끼리 소문내서 진짜 황당하고 재밌었다. 결국 투어가 끝나고 내가 투어 버스 시간을 기다리는 걸 보고서는 자기들이 타고 온 단체버스로 태워다주겠다고 하셔서 감사히 타고 역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맥주 다 마셨다고 자꾸 형님이라고 불러서;; 이천배는 더 황당해짐.
전망대에 가면 세상이 아주 작아지기도 하고 아주 커지기도 한다. 저 커다란 세계 위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는 신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저 작은 세계보다도 더 작은 인간임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전망대에 올라가는 걸 좋아한다. 야경 말고 낮에. 하늘이 붉게 물들어서 더 판타지같이 느껴지는 저녁에 가는 걸 특히나 좋아한다. 오사카에서는 우메다 공중정원이나 덴포잔 관람차, 헵파이브 관람차가 조망하기에 좋고, 교토하면 역시 교토 타워. 도쿄라면 도쿄도청 전망대, 후쿠오카애는 후쿠오카 타워가 있다. 앞서 말한 신세카이 츠텐가쿠 전망대도 갈 수 있었지만 난 츠텐가쿠는 올라가면 만화에 대한 꿈이 깨질 것 같아서 올려다보고만 싶었기 때문에 가지 않고, 아베노하루카스300에 갔다. 지금까지 안 가본 전망대 중에 고르자니 진짜 츠텐가쿠랑 하루카스300뿐이라서 선택지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가본 여러 전망대 중에 단연컨데 가장 높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밖이 바로 보이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날 포함한 엘리베이터의 모든 사람들이 와-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도시 위에서 바라보는것도 아니라, 도시 위의 구름 위에서 내려다본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득하게 높았다. 도시가 모형으로 만든 장난감처럼 보였다. 1800엔을 내면서 피눈물을 흘렸는데, 안 아까웠다. 아득하고 어질하고 하늘이 너무 멀고도 가깝고 아름다웠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을 꼽자면 "이런 세계따위, 멸망해버려도 좋아-!(최대한 오타쿠같은 말투로)"와 "아. 죽고싶다.(실수를 했을 때)" 두 가지인데, 전망대에서 이렇게 아래를 내려다보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이 세상을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진다. 세상은 너무나도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좋다....
그리고 코멘트를 따로 적기 귀찮아서 몰아넣는 사진들..
오사카의 거리. 날씨가 내내 아주 좋았다. 아주 뜨거워서 힘들었지만 어떻게 찍어도 사진은 예쁘게 나왔다.
잠시 다녀온 나고야. 나고야 성과 이런저런 주변 풍경들. 꽤 많이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필름카메라로 찍었나보다. DSLR에 그다지 맘에드는 사진이 많지 않아 남길 게 딱히 없다. 오사카보다 좀 더 시골 풍경같고 좀 더 색색이 예쁜 곳이었다. 특이한 디자인의 가로등을 봐서 한 장 찍어 남긴다.
그리고 이제 코시엔 사진을 올려야하는데 짬이 안 나고 체력도 없다. 잠도 잘 못 자는 여름밤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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