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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4 KT위즈파크 유한준 은퇴식

ZI0NY 2022. 5. 15. 12:24

도저히 다시 야구는 보고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유한준이 야구장을 떠나는 날은 너무나도 보고 싶어서 다시 갔습니다. 수원까지 지하철을 타고 바보같이 갔는데, 야구장에 들어서자마자 Never Ending 61이라고 적힌 걸 보고 눈물이 찔끔 나왔다가 들어갔습니다. 이번 3연전은 포토카드 이미지가 박병호라길래, 박병호가 적힌 KT의 포토카드도 뽑으면서 또 눈물 찔끔 흘리고, 위즈파크에 붙어 있는 박병호의 플랜카드를 보면서도 또 찔끔 울었습니다. 항상 우리 덕아웃에 있었는데, 저 멀리 덕아웃에 있는 박병호는 어떻게 카메라를 본 건지 또 손을 흔들어 주고 작게 춤도 춰 줬습니다. 

경기 전 유한준 헌정 영상을 보면서 또 바보같이 울고, 유한준이 홍원기를 껴안으면서 웃는 걸 보고 또 울었습니다. 절대 안 울겠다는 다짐을 하고 간 건 아니지만, 이렇게 계속 울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유한준 헌정 영상을 보는 유한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한준이 간 2015년부터라도 선수를 마구잡이로 트레이드하는 걸 그만 뒀더라면 유한준의 은퇴식에서 더 많이 함께 축하를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지금 남아있는 선수들은 거의 다 유한준과 함께 뛴 적이 없어서 사실 우리 사이에는 아무 추억이랄 것도 없었다는 게 너무 슬펐다는 생각 말입니다.

3루측에도 인사를 했지만, 그래도 결국 KT홈팬들에게 돌아가는 걸 보고 많이 슬펐습니다. 어찌되었건 한준이형은 자신이 나고 자란 수원구장에서 은퇴를 해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시구를 하는 하진이는 너무 많이 컸고, 사실 유하진 씨는 저의 존재 자체도 모르겠지만, 저는 당신의 분유값을 뒈지게 응원하며 살아왔습니다... 덕분에 우리 팀이 살 수 있었습니다. 나 혼자 친밀도를 쭈욱 올려서 사실 하진이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한데, 진짜 키가 많이 커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게 포대기에 싸인 아기였는데도 한준이형이랑 닮았던 모습인데, 이제 한 열살이 좀 넘었을 텐데 키가 엄청 커서 역시 한준이형을 닮았구나 싶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한준이형을 분유신으로 만들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사는 동안 가내 평안하시고 하고싶은 걸 다 이루면서 사십시오....

히어로즈 응원단 치어리더 선생님들
김혜성
병우야 공을 흘리면 어카니

1루측에 앉으면 박병호의 등을 볼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박병호는 항상 덕아웃으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박병호가 아웃당했는데 박수를 치는 우리 응원석과... 저 멀리 뛰어가는 박병호를 보면서 야구를 다시는 보고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엄지 치어리더

그리고 잊지 않고 찾아주신 히어로즈 팬 여러분, 이라고 했을 때 바보같이 또 울었다. 내가 어떻게 유한준을 잊을 수 있겠어요. 사실 KT에서 유한준이 너무 잘 하고 너무 사랑받아서 히어로즈를 잊어버렸을까봐 내가 다 무서웠는데. 유한준이 마지막으로 다이아몬드를 돌 때, 3루측에서 바보같은 혀팬들이 유한준 히어로즈 응원가를 불러주는데 진짜 한줌단이라서 그라운드까지 안 들렸을 것 같아서 너무 슬펐다. 히어로즈 멋쟁이 안타 유한준 안타 유한준 안타 유한준을 불러줄 사람이 이제 그만큼밖에 안남았구나....

KT의 주장이었고, 중심축이었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히어로즈 멋쟁이였어요... 시발 응원가도 가오가 떨어지는거 어쩔 거냐고ㅠㅠㅠㅠ 

제가 KBO에서 뛴 수많은 대단한 선수들만큼 대단한 기록을 세우고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누구보다 행복하게 은퇴하는 선수라서 감사하다고 하는 사람을 보고 내가 어떻게 안 울 수 있겠어요.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을 다들 너무 많이 했는데, 정말 고생 많았고 고마웠다고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었어요. 십여년 전 내 인생에 유한준이라는 이름의 야구선수로 끼어들어 와 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나는 씨발 지금 너무 슬픈데 형 혼자 가면서 행복하면 다냐고ㅠㅠㅠㅠㅠㅠ 나만 여기 남겨두고 혼자 다음 페이지를 열러 가면 어쩌라고 진짜 씨발....

나는 단언컨대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시간을 돌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다시 이 삶을 살 것을 생각하면 지긋지긋하고 끔찍해서 아무리 현재가 힘들어도 그냥 미래로 나아가는 걸 택해온 사람이다. 그런데 어제 은퇴식에 다녀오고 그냥... 그렇게 시간을 돌리는 머저리같은 새끼들의 마음을 알아버렸다. 나도 10년 전으로 시간을 돌릴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고, 영원히 구천을 헤매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다시 똑같이 선수들이 떠나가고 아무것도 없는 2022년이 돌아온다고 해도 다시 2012년의 그 얼굴들을 볼 수만 있다면 시간을 돌릴 것이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고 그냥 볼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 모습이 다시 보고싶어서 시간을 돌리는 머저리가 될 거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시절도, 공간도 모두 10년 전에 다 함께 있는데 어떻게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어... 천천히 내가 마음 깊이 정리하기 전에 곳곳으로 흩어져버려서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채로 엉망으로 헤집어진 채 10년이 흘러버렸는데 어떻게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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