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야구

내가 히어로즈를 끊느니 야구를 끊는다

ZI0NY 2023. 9. 12. 16:28

히어로즈 팬이라면 언제나 시련을 겪는다. 도망간 네이밍스폰서, 감옥 간 구단주(최대주주), 이와중에 선수는 싸그리 갖다 트레이드하는 프런트, FA로 모두 유출되는 내 추억들... 그리고 온갖 부정적인 비난의 시선. 프런트 이 XXX들이 내 추억이고 낭만이고 다 팔아버려서 은퇴식은 매번 타 팀의 은퇴식을 찾아가게 만드는 게, 이 팀을 응원하는 걸 그만두고싶게 하다가도 그라운드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선수가 있어서 다시 이 팀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기자들, 해설들, 자칭 야구계 원로라는 그 대단하신 분들이 지껄이는 말 때문에 다시 피의 쉴드를 치게 만든다.

얼마 전 고척스카이돔에서 한화와의 더블헤더가 결정되었다. 고척은 우천중단이 없어 예비일을 소진할 가능성이 0%임에도, KBO는 기계적 평등을 내세우며 키움히어로즈에게 더블헤더를 선사했다. 이미 키움은 경기를 가장 많이 소화했고, 그 다음인 KT와도 10경기가 차이가 난다. 가장 적게 경기를 소화한 기아와는 17경기. 그럼에도 어쨌든 KBO는 히어로즈에게 예비일을 남겨둔 채 더블헤더를 배정했다. 항상 그랬다. 허구연 이 자식은 지난 2022 KBO 시상식에서 이정후를 키움히어로즈의 선수가 아닌 누군가의 아들로 소개했고, 히어로즈의 이름을 빼는 데에 있어서는 공적인 자리에서 그 자리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하는 데에 주저없었다. 현대가 야구판을 뜬 후, 7개구단으로 만들기 싫어서 이장석이라는 사기꾼에게 창단 허가를 내준게 KBO가 XXX들인데 다시 발을 빼고 그냥 히어로즈의 존재 자체를 불량품 취급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런 분위기는 야구계에 있다. 디즈니플러스의 야구 다큐 <풀카운트>에서, 한국시리즈 전에 홍원기가 자칭 야구계 원로라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홍원기가 없는 자리에서 키움이 이제 그만 이겨야 하는데...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노출되고, 이정후가 다들 우리를 싫어하잖아요. 알고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화도 났지만 눈물도 났다. 어차피 히어로즈를 다들 싫어하더라도 그걸 선수들은 모른 채로 팬들에게 사랑만 받고 있다고 믿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선수들이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수밖에 없다는 게 슬펐다.

“하지만 투자하지 않는 구단 운영을 지켜보면 많은 투자를 매년 하고도 우승하지 못하고 있는 인기구단과 비교할 때 우승은 아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는 말을 대높고 하는 사람이 기자와 인터뷰를 한다. 히어로즈는 거지구단이라 우승을 하면 안 된다면, 그럼 지겨운 144경기를 왜 하고 얼어죽을 포스트시즌을 왜 하는 걸까. 선수를 사고, 연봉순으로 구단에 줄을 세우고, 총연봉이 가장 높은 팀에게 트로피를 주면 한 시즌을 깔끔하게 딱 끝낼 수 있는데 말이다. 돈 많이 들인 순으로 한팀씩 트로피를 다 주고 나면, 그러면 히어로즈도 그 트로피를 돌려돌려 받을 수 있나? 야구는 돈으로 탑을 높이 쌓는 게임이 아니고, 공은 굴려봐야 결과를 알고, 야구공은 실밥이 있고 그라운드엔 흙과 잔디가 있어서 무조건 일직선으로 공은 굴러가지 않는다. 작년에 세 번째 한국시리즈를 치르면서 나온 수많은 기사들은 히어로즈를 문제아, 불량구단, KBO를 흐리는 미꾸라지 취급했다.(물론 감동의 언더독이라고 칭한 기사들도 많았고 이건 기자님 성함을 외워뒀다.) 그리고 선수들을 연봉으로 칭하면서 비교하고, 그래서 이런 팀은 우승해선 안된다고, 그럼 KBO의 판이 작아질거라고 비난하며 기사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스포츠에 역전이 없다면, 선취점을 낸 팀이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라면, 사람들은 스포츠에 열광하지 않을 것이다. 좀 까고 말해서 우리가 거지인 채로 코시 간게 아니꼬우면 니들도 한번 돈 안 쓰고 가보던가....

얼마 전에도 또 그런 기사들이 나왔다. 히어로즈가 한국시리즈에 나갔더니 거지구단주제에 야구를 잘하면 지들 기분이 상한다는 헛소리를 지껄여놓고선, 1년도 되지 않아 히어로즈가 10위를 하니 거지구단주제에 맨날 패배만 하면 야구를 재미없게 만드니 존재가치가 없다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냥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야구를 한다. 선수가 없어서 누군가 부상당하면 한 명 충원하기도 힘들고, 1군감이 아닌 선수를 1군에서 억지로 붙여가며 키워야 해도 어쨌든 우리는 우리의 야구를 한다. 결국 더블헤더가 포함된 한화 4연전은 전패했지만 그래도, 내일은 또 야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야구를 다시 본다. 오늘의 영웅이 새로 탄생하기를, 우리가 다음 경기를 꿈꾸고 내년을 꿈꿀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실인데 난 09부터 이 팀을 봐서 11년도부터는 히어로즈에 미치기 시작했다. 애초에 나는 팀이 스폰서가 팀을 버리고 가서 거지가 되었던간에, 밥먹듯이 지던간에, 그래서 꼴찌를 하던간에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항상 위를 바라볼 뿐이다. 히어로즈는 언젠가 우승을 해서 트로피를 들어올릴거고, 그 날을 기다릴 뿐이다. 꼭 우승 보고, 탈수 올 때까지 울고 우승 기념 수건 제작한다음에 성불해야지.... 아무리 KBO가, 허구연이, 기자단이, 정민태 이순철 등등 해설들이 키움을 깎아내려도 난 히어로즈가 트로피를 드는 날을 기다릴 거다. 잘 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내 팀이 잘 했으면 좋겠으니까. 야구를 안 보면 안 봤지 다른 팀을 응원할 날은 없으니까.

'일상 > 야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인드래프트 최고  (1) 2023.09.14
코시엔이 막을 내렸다  (0) 2023.08.24
코시엔에 대한 이야기  (0) 2023.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