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미 예수는 부활해서 어딘가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목수라니까 건설노조원일수도 있을 테지요. 하나 분명한 것은 12월 3일 계엄의 밤에 바로 옷을 입고 국회 앞으로 달려 나간 이들이 예수라는 사실입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신도들을 바라보는 이는 예수가 아니고, 찬 거리에서 시민들과 앉아있는 이가 예수일 겁니다.
12월 21일, 동지의 남태령 고개에 농민들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고 간 이가 예수였을 것이며, 그 고개를 넘기 위해 전원 체포를 불사하며 트랙터를 몰고 온 이가 예수였을 것입니다. 난방버스와 핫팩, 보조배터리, 담요, 따뜻한 식사를 보낸 이들이 예수였을 것이고, 이거 경찰 도시락이라고 거짓말하며 시민에게 식사를 전달해 준 라이더가 예수였을 것입니다. 날씨를 견뎌가며 동지를 밝힌 이들이 예수였을 것이며, 쓰러진 이를 위해 자신의 온기를 끊임없이 전달해 준 이들이 예수였을 것입니다. 함께 밤을 새우며 새벽 내내 경찰에 항의문자를 보낸 이들이 예수였을 것이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을 찾아서 연락을 돌린 사람들이 예수였을 것입니다. 밤을 새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교대한다면서 첫차를 타고 달려간 이들이 예수였을 것이며, 덜덜 떠는 어떤 여성에게 기꺼이 자신의 모자와 목도리를 주고 자신은 거리로 떠난 사람이 예수였을 것입니다. 기꺼이 영하 10도의 남태령 고개에서,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함께한 사람들이 예수였을 것입니다.
동지가 지난 아침에, 남태령역에서는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이들에게 나가는 이들이 박수를 치고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저도 방석을 서너개, 목도리와 모자를 한 개씩 가지고 있었는데 시위 중간중간 누군가에게 주다 보니 방석도 없고 모자도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경찰과 여러 번 대치해 본 사람으로서, 경찰과 대치하는 일은 정말 무섭습니다. 내 앞에 그 형광색 옷이 있을 때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날 죽으라고 떠미는 저 경찰들에게 살려달라고 제발 열어달라고 빌기가 죽기보다 싫어서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경찰이 들고 있는 나만한 방패를 온몸으로 밀어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짓날의 밤에 남태령에서 손에 고작 응원봉 하나 든 젊은 여자애들이 트랙터 가는 길을 열기 위해 경찰에게 달려가서 몸으로 밀어내는 영상을 보았을 때, 8년 전의 가을은 여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그래서 아침에, 송년회를 하고 난 다음날의 아침에 나는 지금 남태령으로 가야겠다고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담요와 핫팩으로 꽁꽁 둘러싸여 있는 저 여자애가 쉬려면 내가 가야 하니까요. 16년 전의 여름보다는 약해졌겠지요. 하지만 그건 철제 방패가 플라스틱 방패가 되었기 때문이지 경찰이 시민의식이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가 필요합니다. 저 잔혹하고 한심한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요.
안락하고 무정한 곳에 예수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차갑고 딱딱하지만 다정한 온기가 피어나는 곳에 이미 있을 것입니다.
얄팍하고 잔인한 종교를 숭배하는 이들이 언제쯤 사랑을 알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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