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Real Love 미묘하게 듣기

ZI0NY 2022. 3. 29. 15:24

오마이걸이 컴백을 했다. 난 오마이걸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그 특유의 미묘하고 애매한 분위기 때문이다. 뭔가 부정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아주 감정의 틈새에 있을 것 같은 자잘한 순간들이 한 곡이 된 느낌이라 좋아한다는 느낌이다. 이번 컴백곡 얘기를 하기 전에 이전 노래부터 슬슬 얘기하자면, 불꽃놀이가 있다.

비밀정원

 

불꽃놀이

불꽃놀이 앨범 설명에 보면, 비밀정원과 정원 2부작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가사도 대충 보면 비밀정원은 꼭 다시 기억해달라고 하고, 불꽃놀이는 Do you remember me?라고 물어본다. 작사가, 작사가, 가수의 의도는 내가 알 리 없지만 아무튼 내 귀에 불꽃놀이는 '너에게만 보여줬던 비밀정원'을 추억하는 곡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보낸 좋은 추억이 꼭 고백과 사랑으로, 그래서 연인이 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듯이 이 노래는 그저 혼자 추억하고 있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기보다 그 때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해준 너에게 고맙다고, 나는 그 때가 좋은 추억이었는데 너도 기억하고 있니?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아마도-내 확신으로는- 지나고 보니 그건 첫사랑이었을지도 몰라, 하고 스쳐지나가는 감정이다. 헤어지고 엉엉 울어버리거나, 보고싶어서 지난 추억을 덧그리는 선명한 감정이 아니라 약간은 흐릿하지만 꽤나 반짝반짝 빛났던 것 같은 애매하고 미묘한 감정이다. 그냥 그땐 나만의 비밀정원을 꺼내어 보여줄만한 우정이라던가, 아니면 같이 그냥 좋은 시간을 공유할 뿐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진짜 불꽃놀이처럼 멋지게 반짝거리는 좋은 순간이었음을 깨달은 느낌이다.

불꽃놀이라는 단어와 아주 어울린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번 불꽃놀이를 했을 수 있다. 그 때의 모든 순간은 명확하게 기억나기보다 불꽃이 터지는 게 예뻤다던가 불꽃으로 하트를 그렸다던가 하는 그다지 선명하지 않은 추억들만 남기도 한다. 불꽃놀이처럼 미친듯이 터져나가고, 심장이 벅차올라서 견딜 수가 없는 폭발적인 사랑이 아니라, 모두가 느꼈을 법하지만 별로 관심을 두고 살지 않았던 다소 흐릿하고 은은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나는 다시 생각나는데, 너도 날 기억하는지가 어렴풋이 궁금한 잔잔한 마음이 좋다.다른 노래들도 다 좋아하지만 굳이 이 두 노래로 빌드업을 한 이유는... 리얼럽을 리뷰하기 위해서였다. 번지나 던던댄스같은 신나는 곡도 좋아하고, 다섯 번째 계절처럼 감성적인 곡도 좋아하지만 요 알쏭달쏭하고 있는듯 없는듯한 미묘한 감정 카테고리에 묶기에는 이 노래들은 좀 확신에 찬 느낌이 아닌가? 싶어서 뺐다. 그래서 바로 후다다닥 점프를 해서 Real Love를 들으러 간다...

Real Love

컴백소식을 하루 늦게 듣고 뮤비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씨발 이 노래는 미쳤다고.... 진짜 이 시기에 들어야만 하는 노래가 나와버렸다고 확신했다. Real Love에서 말하는 사랑은 사실 조금 소심하다. 한여름의 바닷가에서 네가 너무너무 좋아서 견딜수가 없다고 소리치는 느낌도 아니고,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아래에서 너와 걷는 순간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하는 설렘도 아니다. 비슷한 걸 찾자면, 번지처럼 약간 충동적으로 안전장치 없이 막 뛰는 상황이다. 하지만 번지처럼 뛰지도 않는다.

리얼럽은 내 감정이 막 터져나가서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다. 이 음악, 이 분위기, 이 공기... 어? 나 너 좋아하나?하는 감정같다. 주변 상황같은 건 다 지워지고, 너만 보이게 되어버리는 아주 극적인 감정이라기보다는 분위기를 좀 타버려서 갑자기 최면처럼 빠져버린 것이다. 다섯 번째 계절과 비교하자면, 다섯 번째 계절은 주변 묘사가 전혀 없다. 너 때문에 지금 내 마음에 꽃잎도 흩날리고, 싹도 피고, 마음에 지각변동도 일어난다. 네 이름만 들으면 심장이 막 뛰어서, 난 이게 사랑이란걸 단번에 알아버렸다. 이렇게 너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바뀌어서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확신해버렸다. 오직 너 하나만 곱씹다가. 너를 생각하니까 노을이 갑자기 멋지게 보인다. 리얼럽과 순서가 반대되지 않은가.

솔직히 그런 적 있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호감은 있는데 고백은 못하고 그냥 친하게 지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하게 내가 영화 속에 있는 생각이 드는 거다. 겨울에서 봄으로 날은 슬슬 풀리고, 뭔가 하늘도 좀 예쁘고, 근데 우리는 같이 있고, 옆에서는 좋은 음악이 들리면서 분위기가 갑자기 무르익은것 같은 기분이 들자마자 이거 운명일지도 몰라, 하고 착각을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내 감정에 100% 충실하기보다 주변을 좀 빌려와야한다. 이 주변의 모든게 완벽해서, 그래서 이건 사랑일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충동적이고 사랑스러운 감정을 고백하진 않는다. 지금이야, 라고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건 진짜 사랑이야! 하고 혼자 벅차오른다. 솔직히 설렘을 느꼈다고 바로 막 고백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누군가는 고백하고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군가는 순간의 설렘으로 남겨두고 잊는다. 그렇게 금방 사라질지도 모르는 작고 애매한 감정이다. 봄날에 두근두근하게 심장이 뛰는 것보다는 살짝 약하고, 겨울에 포근한 온기를 느끼는 것보다는 약간 더 확신해버린 딱 봄과 겨울의 중간에 애매하게 선 이 날씨에 너무 잘 어울리는 노래다. 이 마음은 잘 되면 봄에 썸타고 연애하는거고, 그대로 흐지부지 끝나면 썸이고 연애고 없어서 그냥 잊혀지겠지.

앞서 살짝 번지 얘기를 했는데, 번지는 좀 더 감정을 세심하게 쌓아 뒀다. 좋아하는 마음을 리얼럽처럼 이제 막 깨달아서 갑자기 날씨가 너무 좋고~ 완전 영화 아냐?하는 게 아니라, 계속 기다리고 기다렸다. 이미 너한테 고백할 마음의 준비는 다 했는데 당연히 그렇듯이 우중충한 날 고백하고 싶지도 않고, 이왕 할 거면 제일 좋은 날 제일 예쁜 곳에서 고백하고 싶었던 거다. 근데 어? 뭐지? 지금 갑자기 때가 와버렸다! '정했어, 간다. 고백하러! 안전장치? 그런건 필요 없어. 난 당장 고백해야만한다!' 하는 약간 물소같은(ㅋㅋ) 느낌이 든다. 귀엽다... 준비된 충동이랄까... 그리고 확신도 있다. 뛰어내리고 다치는 게 아니라, 니 심장 정확히 한 가운데 안착할 자신도 있다. 그만큼 고백 대상과 감정교류가 충분히 있었다는 것 아닐까? 암튼 이 리뷰에서 뺀 이유는 그거다... 이건 별로 애매하고 미묘한 감정이 아니다. 얼마나 확신에 가득 차 있는가. 됐어, 준비 끝. 너는 이제 나 뿐이야!

궁금한게 있다면 왜 7시간 비행 뒤 만난 섬이지... 멤버가 7명이라..? 7시간 직항이면 한 인도네시아...인데....? 섬은 많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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