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책

이경희, 《모래도시 속 인형들 2》

ZI0NY 2023. 12. 11. 20:31

《모래도시 속 인형들》 첫 권의 리뷰를 11월 말에 쓴 건, 바로 이어서 두번째 권의 리뷰를 쓰려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일정.. 어림도 없지.. 출간 당일에 책을 사서 캐리어에 넣고 지방 뺑뺑이를 도느랴고 그냥 읽기만 했다. 출간 당일에 바로 리뷰를 쓰려는 목표는 실패했지만 리뷰는 쓴다.

그리고 난 이게 《모래도시 속 인형들》의 마지막 이야기이자 《테세우스의 배》의 찝찝한 결말에 답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림도 없지 《모래도시 속 인형들 3》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는 To be continued... 라는 문구를 보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감히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 가장 좋았던 파트를 먼저 얘기하자면, '힐다, 그리고 100만가지 알고리즘들'이었다. 가장 좋았던 이유는 이야기가 풀려가면서 점점 강한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예상한 것과 똑같이 전개되고 똑같은 결말을 맞아서 점점 머리가 곤두서는 느낌이 드는게 정말 좋았다. 기차에서 책을 읽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봐바. 지금 내가 말한 게 맞잖아!"라고 외치고 싶다고 느낄 정도로 날카롭게 기분좋았다.

그 외는 사실 내용은 흥미로웠지만 읽기 역겨워서 중간중간 책을 덮었다. '복원 요법'의 신체를 잘라서 결합하는 괴기스러움도 싫었고 '세컨드 유니버스'의 인간의 폭력성이나 마약 등 쾌락지상주의자들의 범죄도 읽고싶지 않았다.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많이 중간에 읽다 중단했으며,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냈다. 비위가 약해서 이런 걸 정말 끔찍하게 싫어함에도 결말을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헛구역질해가며 읽었는데 지금 이게 끝이 아니고 3편이 있다니 이걸 웃어야 해 울어야 해...

최근에 쓰인 소설의 맛이 살아나는 건 배경설정이나 인물의 대사에서 요즘의 일들이 묻어날 때다.

참고로 이건 줄서기... 다. 반경 2미터 안에 세 사람이 모이면 폭탄이 터지는 다소 애니팡같은 설정인데, '인류가 이런 간단한 일조차 해내지 못한다는 건 이미 수 차례 역사가 증명했어요.'라는 문장이 웃어넘기기엔 코비드19때 사회적거리두기를 꿋꿋히 안 하던 인간들이 꾸준히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쉬이 웃어 넘겨지지는 않는다. 가장 쉬운 방법은 2미터 간격을 두는 거지만 인간은 그 쉬운 걸 해내지 못하곤 한다. 평소에도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을 소설에서 또 만나니 참 우습고 가여웠다. 인간 존재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건 다른 로봇SF에서와의 감상과 비슷한데, 로봇(혹은 휴머노이드, 안드로이드, AI 등의 비-인간존재)과 인간의 경계가 무엇인가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인간과 로봇을 가르는 무언가가 사랑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슴을 따른다고 하지만 아주 정확하게는 뇌의 연산을 통해 비합리적이고 멍청한 선택지를 고르는 행위말이다. 바보같이 맨날 지는 팀 야구를 또 보고, 주말에 쉬어야 출근을 할텐데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나가고, 밤을 새워서 지방에 내려가 사진을 찍는 모든 바보같은 행동들이 사랑이고 그걸 하는 건 인간이라고 믿는다(그리고 동물도 그러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소설에서 맹점이 되는 부분도 이러한 사랑이다. 로봇은 아주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적확한 알고리즘 체계를 수없이 확인하고 확률을 계산해서 가장 바보같은 선택을 고르곤 한다. 마치 인간이 누군가를 사랑해서 자신을 조금 포기하듯이 로봇도 자신을 조금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이야기가 로봇SF에서도 흔히 보인다. 철학을 전공한 자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과연 인간으로, 혹은 인간성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신체의 문제? 정신의 문제? 자아인식의 문제? 주변인식의 문제? 언제나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래서 진짜 인간이란 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걸 알면 내가...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었겠지... 소설중독자가 아니라...

또 철학맨스러운 얘기를 하니까 말이 우다다다닥 나왔는데, 책에도 결말이 안 났는데 나는 뭐라고 이 독후감을 마무리하겠는가. 이 트릴로지의 마지막 이야기는 여름 전에 나와서 본격적으로 바쁘기 전에 여유있게 읽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