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후에 읽고 싶은 책이 있는가? 1989년부터 쓰여진 공각기동대를 보면서 30년이 넘게 흐른 지금, 그때의 상상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를 찾아낼 때면 전율이 흐른다. 그렇다면 2023년에 쓰여진 2123년의 서울은 또 얼마나 닮고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래서 출간하자마자 샀으나... 서울의 2123년의 서울 길거리에 놓인 벤치에 앉아 읽고 싶어서 100년을 묵히려고 했다. 진짜로. 근데 내 건강상태, 혹은 남북관계, 혹은 사회분위기나 뭐 이런 것들을 보면 내가 100년을 더 살 거라는 확신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한 해만 넘겨서 읽기로 결심을 틀었다. 10년은 묵혀볼 걸 그랬나하는 후회가 조금 들긴 하지만 아무튼 2024년의 첫 책, 《지금, 다이브》다.
차례
이서영, 언제나 마지막에는 한잔 더
박애진, 소켓 꽂은 고양이
박하루, 부드럽고 향기로운 것
정명섭, 마지막 변호사
이산화, 마법의 성에서 나가고 싶어
김이환, 돈은 돈이고 인생은 인생이다
사이버펑크는 요즘 그나마 Y2K패션, 고프코어 룩의 유행과 함께 약간 돌아온 듯 보였으나 어림도 없지. 사람들은 90년대까지만을 탐구하고 사이버펑크의 아이템이라고는 고글정도만 차용한 채 80년대까지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왕 화끈하게 사이버펑크룩으로 돌아가서 펑키한 패션이 유행하길 바랬으나 아니었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데 내 취향은 언제 유행으로 돌아오는걸까. 그래서 오랜만에 보는 사이버펑크가 아주 반갑고 즐거웠다. 내가 100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일 년만에 읽어버린 데는 다 이런 사회문화적 이유가 있다. SF는 아주 비현실적인 것을 아주 현실적인 공간에 가져다둔다. 이 책은 서울이라는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익숙한 도시에 최근의 SF에서는 그다지 잘 나오지는 않는 아주 사이버펑크적인 변주를 주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즘 SF는 확실하게 우주나 바이오쪽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천문/우주기술이나 의학/생물학기술을 토대로 한. 그게 아니라면 아예 전통신앙이나 종교를 비틀어서 SF로 풀어내는 책들은 꽤 읽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읽는 사이버펑크였다. 물론 내가 근 몇년간 우주와 관련된 것만 읽어서 이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가장 사랑스러웠던 이야기는 박애진의 〈소켓 꽂은 고양이〉였다. 진짜 신기했던 건 읽으면서 너무 좋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 읽고 목차를 지금 쓰면서 작가 이름을 알았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이 작가의 단편이 들어있는 단 한권의 책을 찾겠다고 10년을 헤메이게 한 그 작가. 단편집의 경우 작가의 이름을 안 보고 그냥 읽는데, 읽고 나면 항상 가장 좋았다는 마음이 드는 작가. 앞서 말한 저 책은 다음에 꼭 독후감을 적기로 한다. 이 작가의 책은 가만히 읽으면 애절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한데, 조금만 집중하면 섬뜩하고 슬퍼진다. 〈소켓 꽂은 고양이〉도 그랬다. 부잣집 고양이가 되는 이야기는 예능 〈런닝맨〉과 겹쳐지며 유쾌하고 경쾌해 보이지만 여긴 사이버펑크 세계에서 사용당한 인간과 길고양이가 나오는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신체와 정신에 대한 고민은 이서영의 〈언제나 마지막에는 한잔 더〉에서 하고, 대통령을 조롱하는 듯해서 곧 금서가 될 예정인 단편은 박하루의 〈부드럽고 향기로운 것〉이었고, 다정한 이야기는 정명섭의 의 〈마지막 변호사〉였고, 정석적인 사이버펑크의 맛은 김이환의 〈돈은 돈이고 인생은 인생이다〉에서 느낄 수 있다면 가장 완벽하게 상상되는 단편은 이산화의 〈마법의 성에서 나가고 싶어〉였다. 각 단편이 서울의 한 지역씩을 나누어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서울에 10년 가까이 살고있는 나는 애초에 서울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건지 쉽게 어떠한 지역에 대해 상상하기 어렵다. 기껏해야 정말 오래오래 다닌 대학 근처 정도가 내 최선이 아닐까..? 이산화의 〈마법의 성에서 나가고 싶어〉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서울에 있는 거대한 마법의 성, 롯데월드가 배경이다. 롯데월드에 한두번정도 가봤지만 놀이공원이라 주변을 아주 샅샅이 둘러보고 사진을 찍어서 그런지 이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끔찍한 마법의 성의 모습이 읽는 내내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산화 작가의 다른 단편인 〈편의점〉과 〈증명된 사실〉을 읽을때도 아주 짧은 단편임에도 배경이 생생하게 그려졌는데 이게 작가의 능력이라 그런가..? 지금 문득 생각해보니 그런것도 같네..? 어라라... 아무튼! 환상의 나라 ~ 는 에버랜드인데;; 여기서 경기도민인게 드러나고 말았다. 롯데월드 캐치프레이즈를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꿈과 희망의 공간이 의도되지 않은, 사고로 터져버린 사이버스페이스로 변해버리면서 가고 싶은 곳에서 나가고 싶은 곳으로 바뀌어버린 롯데월드를 잔혹하게 그려냈다.
책을 읽는 순간부터 독자는 강제적으로 사이버스페이스로 다이브하게된다. 3차원일지, 3차원을 넘어선 공간일지 전혀 모르는 사이버스페이스를 상상하기 위해 강제로 생각을 더 열고 유선통신과 무선통신을 번갈아 흘러다니다 보면 한 이야기가 끝나고,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의 무언가가 남아 있어서 여기가 여전히 서울임을 되새기게 된다. 그래서 헤엄치지도 못하고 그냥 빠져드는 《지금, 다이브》라는 제목이 정말 잘 어울린다.
뒷표지에 써 있는 말이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지금의 서울이다. 오직 욕망을 빨아들이는 도시. 그래서 익숙해지지도 않고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은 도시. 인구가 계속 소멸하고 서울도 유지되지 않을 때가 오면 서울은 아무것도 빨아들이지 못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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