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노래 제목이 러브윈즈로 공개되었을 때, 러브윈즈가 퀴어 슬로건인걸 모르고 썼다면 멍청하고 알고 썼다면 악의적이라고 일기에 적었다. 러브윈즈올로 제목이 변경되고, 음악과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면서 확실하게 이 두가지를 다 했다고 생각한다. 자기 눈에 보면 예쁘게 조합할 수 있을법한 것들을 잘 짜깁기해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내 인생에서 아이유라는 존재가, 그의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기둥이 아주 낡아 버린 기분이 든다. 섭섭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조금은 슬픈 것 같기도 하다. 내 감정에 '~같다'라는 표현은 절대 붙이고 싶지 않은데 지금 정확하게 이 감정의 상태를 모르겠다. 감독의 해석본*을 뮤직비디오를 본 후에 읽었는데, 감독은 생각이 참 많았더라. 문제는 이 생각 자체도 아주 혐오적이었을뿐더러 영상에서 서사적으로 잘 표현되지도 않았다. 그냥 이래저래... 담긴 의미도 표현하는 방식도 모두 잘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러브 윈즈라는 단어가, 사랑이 다 이긴다는 말이 예뻐서 가져다 쓰고 싶었던걸까?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걸까? 아무도 말리지 않은 걸까? 아니면 말리지 못한 걸까?로 이어지는 물음들이 내 안에서 생겨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그래서 그 사랑이 모든 걸 다 이겼는지를, 나는 그래서 차라리 이 사랑이 황폐한 세계를 구해내기라도 할 줄 알았다. 그래야 말로만이라도 사랑이 다 이긴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이겼는가? 라고 묻는다면 엄태화 감독이 '나아가 우리 일상에서 만연한 각종 차별과 억압'이라고 설명한 네모는 다음과 같이 다시 언급되며 마지막에 그 속성이 바뀐다. '끝내 ‘네모’로 인해 육체가 소멸하고 그들이 걸치고 있던 ‘옷’만 남게 된다. 두 사람은 마지막 캠코더 화면에서 이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으로 암시되는데, 이는 온갖 억압과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음을 뜻한다. ' 어째서 차별과 억압으로 인해 육체가 소멸하면 억압과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것이 승리가 되는가? 이런 말도 안되는 내용이 이 곡과 뮤직비디오의 서사를 관통하고 있으니 퀴어 슬로건을 가져다 썼다거나, 장애를 '아름답지 않은'것으로 본다거나 하는 내용적 시대착오성을 차치해두고서라도 납득하기 힘든 것이 되어버린다. 수많은 내 지인들이 그 차별과 억압때문에 떠났고, 나도 시도한 당사자 중 한 명이다. 결국 억압과 압박에서 벗어났지만 이건 사랑이 이긴 게 아니라 단 한 번 이기기도 전에 죽어버린 수많은 패배한 사랑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단 한번의 승리를 위해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내가 아는 사랑인데, 모든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는것도 인류애적 사랑도 아니고 그냥 단 둘이 손잡고 도망치자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점도 마음을 참 복잡하게 만들었다. 요즘같은 저출생 시대에 남자랑 여자랑 결혼해서 산다고 하면 누가 그렇게 반대하는지가 궁금도 했다. 제목이 거의 반어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세상에게서, 필연에게서 도망쳐 나와 저 끝까지 가 달라는 말은 결국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결국 이 사랑은 어째서든 이길 수 없다고 계속 말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이걸 팬송이라고 한 손편지가 생각나서 더 절망했다. 난 비난받아도 이 자리에 서서 아이유를 지켜내고 싶지, 도망쳐서 숨고 싶은 게 아니란 말야. 왜 이게 이긴 사랑인지는 어쨌든간에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범위는 아니다. 이성애자들은 축복받으며 하는 고작 결혼이 퀴어에게는 비난받고,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밀려나고, 그럼에도 법적으로는 할 수도 없는 것이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동안 죽고, 패배하고, 포기해온 끝에 미 연방대법원에서 2015년에 강제로 동성결혼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은 중단되어야 한다는 판결과 함께 비로소 사랑이 승리를 거뒀다는 의미에서 러브 윈즈라는 슬로건이 나온 것이다. 난 차라리 아이유가 손글씨로 쓴 내용처럼, 아주 정말 차라리 이게 인류애의 내용이었고 그냥 좋게 좋게 말하는 우리 서로 사랑을 하자는 뉘앙스였다면 그냥 괜찮다고 어차피 이 산업에서 공개적으로 성소수자 권리를 주창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거였다. 그래서 그렇겠거니 하고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참... 다시 앞과 똑같다. 못난 마음을 못난 포장지로 포장한 느낌. 러브 윈즈 올이라고, 모든 걸 사랑이 이긴다고 말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다 끝나 버린 주제에 이건 예쁜 사랑 이야기라며 의미와는 관련없는 그냥 색감이 비슷한 스티커를 붙이고 맥락과는 상관없이 그냥 잘 만들어진 감성문구를 가져다 붙인 것 같았다. 내가 아이유를 사랑해온 약 긴 시간들 중 가장 실망스러운 곡과 가장 실망스러운 뮤직비디오였다.
감독의 해석본*
'잡다한 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0701 서울퀴어문화축제 후기 (1) | 2023.07.03 |
---|---|
탈색하기 (0) | 2021.11.19 |
운동하기 (0) | 2021.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