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책을 싫다고 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보통 싫다고 말하기 전에 가져다 버리기 때문에. 그런데 이 책은 버리기엔 재밌고, 읽기엔 그다지 내가 좋아하는 서술은 아니다.
영주나 상인이 후원하는 '여행가'라는 사람들이 있는 세계관이다. 그리고 책 뒷표지에는 '그곳에서는 금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고, 강물에 섞여 흐른다고 했다.'라는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그래서 초반에 읽으면서 주인공이 시련과 고난을 지나서 황금의 땅 엘도라도로 가는 이야기일지 추측했다. 아무래도 황금의 폭포는 엘도라도 이야기니까... 생각과는 조금 다른 전개였지만, 아무튼 그래서 싫었다는 건 아니고 다른 이유로 읽기 피곤했다...
일단 앞부분에서는, 주인공의 시련이 정신적인 쪽을 자극하는 동시에 육체적인 쪽에도 있어서 읽는 내가 너무 피곤했다. 어디를 가도 처음에 그를 데려간 사내에게 맞으면서 범해지거나, 아니면 그 지역의 누군가에게 범해졌다는 내용이 정말 많았다.... 실제로 읽다가 중간에 친구에게 한 메시지는 "왜 이렇게 섹스를 많이 하는거야?!" 라는 내용이었다. 이 부분에서 기가 빨려서 처음 사고 읽다가 그만둔게 몇 번은 되었던걸로 기억한다. 제발 섹스를 멈춰주세요ㅠㅠ 문제는 주인공이 이것에 대해 극렬하게 거부하거나 뭐 그런 게 아니라 또 어느정도는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친밀감을 느끼고 있어서 읽는 나만 힘들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중반부에 사막의 별에서 다른 여행가들과 상인에게 후원을 받는 것과 영주에게 후원을 받는 것에 대한 논쟁과 싸움이 있고 나서, 후반부로 넘어가면 야힘에게 이야기를 들고 쓰는 내용으로 넘어가서 책의 독자인 나에게는 이야기속의 이야기가 된다. 이게 또 이것대로 복잡하다.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액자식 구성... 그리고 내용도 노예, 인육, 감금 뭐 이런 무거운 내용이 나와서 비위에 안 맞아서 힘들었다. 슬픈 점은 그래서 주인공이 어디로 떠나게 될지가 궁금하다면 계속 읽어야만 한다는 거다. 그래서 또 읽었고, 다 읽었고, 그냥 이 또한 이 여행가의 삶의 일부분이었구나 싶은 결말이었다.
여행이란 돌아올 곳이 있어서 떠날 수 있는 거라고 말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도 여행을 나름 다녀 본 사람이라,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뚝 떨어지는 불안과 공포를 알고 돌아갈 집의 안온함을 안다. 하지만 사실 여행을 끝낼 즈음이 되면 그동안 불안이라 생각했던 것이 고요한 자유였고, 평화라 생각했던 일상이 나를 집어삼킨다고 느낄 때가 있다. 물론 그래서 비행기를 취소하고 계속 떠돈 적도 있다... 돈이 떨어질 때까지...; 다시 돌아가서, 돌아올 곳이 있어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면 이 소설 속의 '여행가'들의 돌아갈 곳은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처음 글을 배우고 여행기를 배운 서가일수도 있고, 주인공의 경우에는 유일하게 자신을 꿰뚫어 본 누나의 옆일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돌아갈 곳이 없기에 더 용감하게 검은 사막으로 발을 내딛고, 황금의 강을 찾아 아무도 밟지 않은 곳에 발자국을 남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다. 어쨌든 역마살이 있는 사람들은 좀 피곤하게 산다. 안락을 목줄로 여기는 인간들이 아닌가... 그리고 그건 나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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