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야구선수는 1군 선수단끼리 의리를 지키겠다고 결의씩이나 하던데 사실 야구선수가 의리를 지키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는 것 같다. 그까짓 떡볶이랑 치킨에 맥주 좀 마신걸 숨기겠다고 오바쌈바 난리 피울 필요도 사실 없다는 말이다. 그냥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살기만 하면 야구선수와 의리는 그럭저럭 잘 지켜진다.
경기중에는 일단 응원단과 팬과 야구선수가 지킬 의리라는 게 있습니다. 점수 차가 많이난다고 수비도 설렁설렁 하고 타석에서는 선풍기나 몇 번 돌리다가 맥없이 돌아가면 그냥 저새끼들 보러 내가 돈 내고 3시간 고문당했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럴 때 나는 선수새끼분들에게 화가 나기보다 응원단에게 죄송하다. 그니까 사실 뭐 그게 오늘이 안되는 날이라 힘이 빠진건지 지들이 질꺼라고 생각해서 대충 하는 건지 전혀 상관 없이 선수들이 힘이 빠져 있다는 게 보이면 105블럭의 분위기는 실시간으로 흉흉해지고 다크버건디고 버건디고 할 거 없이 1루측에서는 사람들이 스멀스멀 나가기 시작한다. 다들 한숨을 쉬거나 핸드폰을 보고, 그라운드를 기대와 긴장으로 보는 게 아니라 멍하니 응시할 뿐이다. 이럴 때 다시 공격 이닝이 되면 응원단은 "우리 선수들 역전 할 수 있습니다!"라던가 "응원의 힘으로 함게 역전 만들어 봅시다!" 같은 열정으로 가득 찬 멘트를 하는데, 팬들의 눈이 이미 식어 있어서 응원단 선생님들이 정말로 애원하는 지경에 다다른다. 이러면 진짜 내가 선수새끼분들하고 의리 챙기러 야구장 왔나 응원단이랑 의리 챙기러 왔지. 이런 쓰레기같은 경기 함께 응원하면서 견딘 우리 의리 영원하자. 이런 기분으로 일어서서 춤을 춘다. 근데 춤추다가 중간에 끊지좀 말자. 응원가 1절은 완곡하고 아웃당해주면 안될까?
하지만 중간에 나가는 팬들도 사실 일부분이고 대부분의 팬들은 진짜로 9회말에 10점차를 뒤집을지도 모른다는,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표어를 가슴에 타투하고 버틴다. 2아웃이어도 기도하면서 눈감고 있는 팬들도 많다. 그리고 경기가 져도 선수들에게 박수 한 번 더 쳐주려고 일어서서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선수들을 기다린다. 팬들은 좀 불쌍하다. 그까짓 의리가 뭐라고 뒈지게 지키려고 든다. 그러니까 선수분들께서는 맥빠지는 경기만 안 하셨으면 좋겠다. 져도 좋으니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팬서비스로 마운드에 야수를 올리던가. 그건 웃기기라도 하지.
경기외에는 단 한 가지만 지키면 된다. 사회면에 안 나오면 된다. 사회면에 나오는 순간 그새끼는 죽창에 걸어서 고척돔 위에 올려놓고 산 채로 구워버리고싶다. 진심이다. 한치의 거짓도 없다. 제발 스포츠면 1면에서 좋은 내용으로 만나주면 안 될까. 팬들은 바빕신 가호 그까짓거 받겠다고 고척돔 가는 길에 쓰레기도 줍고 어르신께 버스 자리도 양보하고 무거운 짐도 대신 들어드리는데 (내가 그랬다.) 사회면에서 우리 팀 선수를 보는 순간? 분노가 용솟음친다.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거대한 분노에 잠식당하고 나면 그냥 다시 한숨만 나온다. 그럼 그렇지 뭐. 저놈새끼들이 다 저런 놈들이지. 난 뭐하러 야구 봤을까. 그냥 자기혐오로 내용이 후루룩 흘러가버리면 야구가 한참 재미없다. 팬과 신뢰관계가 아름답게 깨지는 모습을 보며 음 조각난 우리 신뢰가 반짝거리는구만! 하고 영원히 금기어로 그 새끼를 묻어버리곤 한다. 그냥 나는 야구를 보고 싶었는데 왜 경찰조사를 받고 계신가요. 제발 그러지 맙시다. 우리 평생 레전드로 서로서로 기억해주자구요.
야구선수와 팬들이 의리를 지키는 법은 존나게 쉽다. 좀 서로 소중한 줄 알고 범죄나 안 저지르면 그만이다. 근데 그걸 못해서 날라간 선수가 몇이고 그걸 못해서 진상부리는 팬이 몇이던가. 프로야구 판 깨끗하게 좀 굴립시다. 앞으로 뒈질때까지 굴릴 그놈의 프로야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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