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아주 평범한 이야기인 동시에 아주 특별한 이야기다. 문득 자신을 돌아본 20대라면 흔히 느끼는 불안과 불안정, 지금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외국이 두려운 동시에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한국 땅은 나를 점점 작아지게 하지만 어쩌면 저 머나먼 나라에는 자유가 있다는 꿈을 꾸는 시기 말이다. (그리고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했다면 서울에서 느끼는 불안에 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진짜로 떠나서 몇 년간 돌아오지 않는 것은 특별하다. 떠났다가 돌아올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서울에서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커녕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막함이 사람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그렇지만 이 책의 작가는 떠났고, 돌아왔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항상 작가의 시각과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작가의 눈으로 본 세상을 독자는 바라본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에서 가장 이상하게 느꼈던 점은 어쩐지 작가가 보는 것이 세상이라기보다 자기 자신 같았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보는 감상이 아니라 무언가를 보는 자기 자신을 보고 있었다. 특히 앞부분일수록 관찰하는 서술이 더 많은데, 작가는 방황하는 자신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것을 그만두고(아니면 자신을 파고드는것을 그만둬도 된다고 생각한걸까?) 천천히 감상에 빠져드는 모습으로 변화한다. 새로운 시간과 지나간 추억, 바뀌는 풍경 속에서 자신이 진짜로 보고 싶고 갖고 싶고 지키고 싶던 것들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고작 한 권으로 요약된 긴 시간동안 계속되어왔음이 느껴진다. 따뜻한 그림과 담담한 말투가 잘 어우러진다. 아주 요란하고 특별하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집트 여행기를, 인도 체험기를 쓸 수도 있었던 것을 그냥 그렇게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자신도 그냥 그렇게 이방인으로 살았다는 이야기가 책 한 권에 담겨 있다.
책을 냈으니 당연하겠지만, 결국 작가는 서울로 돌아온다. 해외에 나가며 다신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가 돌아오면 '해외 살이를 포기했다'거나 '실패했다'는 말을 듣곤 한다. 떠나 있는 순간으로부터 엄청난 깨달음을 얻기라도 해야 하며, 그래서 결국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계속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서울에서의 압박이 아마 서울을 떠나게 되는 원인일 것이며, 서울로 돌아오기 두렵게 만드는 것일 테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결국 다시 돌아오곤 한다. 자신만의 특별한, 단 하나뿐인 결말과 함께 돌아온다. 눈부신 자유도 완벽한 해방도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살면서, 무언가를 잃고 놓치고 다시 찾지 못한 후에 이번에는 지킬 것이 뭔지 찾아내는 특별한 이야기가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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