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책

선동열, 《선동열 야구학》

ZI0NY 2023. 10. 17. 13:28

야구 데이터에 관심은 있다. 당연히. 시간 나면 선수들 데이터나 기록을 뜯어보기도 하고, 재미있는 기록이나 데이터를 정리하기도 한다. 한 시즌동안의 날씨를 모두 찾아내서 '날씨에 따른 선수별 타율'이라던가 '선수별 주루장갑 색에 따른 도루 성공률'같은 이상한 데이터를 만드는게 작은 취미라서 그렇다. 도대체 왜 저런 걸 만드냐면 야구에 진짜 쓸모있는 좋은 데이터들은 어차피 구단도 알고 해설도 알아서 다 말해주니까, 나한테 필요한 것은 오직 지금 그래서 이 선수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의 미래를 예견해주는 미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미신에 미쳐서 야구를 본다. 대부분의 야구관련한 말을 직감과 느낌으로 문장을 구성한다. 투수는 공을 던질 수 있는만큼 한계까지 던져야 진짜 투수가 된다고도 생각하고 (이게 혹사라는 자각은 있긴 하다..), 한 번 괜찮았던 선수는 언제든지 자기 자리를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쓸놈쓸을 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상 김성근과 다를 바 없는 투수 팔 분쇄기, 혹사머신, 노인공격형 야구팬인것이다. 하지만 결국 사주나 관상학 성명학도 빅데이터에 의한 분석이니 미신도 과학 아닐까?

 

책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면, 무려 선동열이 최신 야구 트렌드를 책으로 썼다고? 라는 생각으로 샀다. 이 책의 부제인 '20세기 직감이 21세기 과학과 만났다'처럼 내가 인식하는 선동열은 20세기 직감의 화신이자 눈앞에 도표를 따 줘도 안 보고 선수를 기용하는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의외로 책은 꽤 재밌었다. 투수는 시즌 전 캠프에서 공 삼천개를 던져야 한다(*일반적인 에이스급 선발투수가 한 경기에 100구를 던질 경우 한 시즌 3000구가 겨우 채워진다)고 말했던 것을 해명하는데에서 시작하는 내용은 내가 한때 아주 관심있게 자료를 뒤져봤던 어퍼스윙/레벨스윙을 지나서 투수의 강속구와 릴리즈포인트로 넘어간다.

내용을 전개하는 과정이 아주 매끄러워서 선동열이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나? 혹은 엮은이가 글을 이렇게까지 잘 다듬나?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예를 들면 첫 챕터는 투수의 구속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한미일의 연도별 구속변화의 차이라던가 선수들의 체격과 체형을 천천히 탐구했다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해서 투수의 팔은 어떻게 되는지를 찾고 야구는 구속을 높이면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투수가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뺏어서 점수를 못 내게 하면 이기는 게임이라는 본질로 화제를 전환한다. 플라이볼 혁명이라고 불리는 뜬공이 땅볼보다 경기에서 유리하다는 내용을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어퍼스윙과 레벨스윙의 차이를 설명하고, 쳐봐야 다 뜬공인(나는 이렇게 느낀다) 어퍼스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납득가능하고 쉽게 설명한다.앞서 말한 내용이 자연스럽게 읽히면서 페이지가 넘어간다는 건 야구와 관련한 다양한 숫자와 기록, 그리고 그것을 분석한 도표들이 바로 이해될정도로 쉽게 읽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의 핵심은 '쉽다'는데 있다. 세이버매트릭스에 관련한 책들은 읽다보면 이해가 안 되어서 다시 읽기도 하고, 나도 한두해 데이터 뜯어보고 스포츠 관련한 공부를 한 게 아닌데도 '뭐라는거야?'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하는 경우가 있어서 손으로 공을 잡아서 모션도 해보고, 그림도 그려가며 이해하는데 이 책은 정말 정말 정말 쉽게 스르륵 읽힌다. 세이버매트릭스가 알고싶은데 난생처음인 사람에게 입문용으로 한번 추천해볼만하다. 읽으면 데이터 뜯어가며 야구를 보는게 재밌다고 생각하게 될 거다. 야구지옥으로 사람을 빠뜨릴 절호의 기회다.

 

책 내용을 적기도 그렇고, 마지막으로 피치터널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하겠다. 우리 팀 선수들도 릴리즈포인트가 일정한지, 그래서 피치터널이라는게 진짜 말이 되는건지 확인하고 싶으니 KBO도 선수별 구종별 연도별 릴리즈포인트를 알려줘라... 지금 내가 찾을 수 있는건 당해년도 직구의 릴리즈포인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