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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테세우스의 배》

사람이 이렇게 한결같이 늦은 시간에 잡다한 일을 해도 되는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거나 저녁에 후딱 올리면 되는 걸 부여잡고 생각하다가 밤 12시가 지나서야 쓰기 시작하는 건 멀쩡한 인간인가? 하지만 나는 평생을 이렇게 미적대며 살아와서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아닐 것이다. 내 껍데기를 따라한 무언가라는 말이다... 그렇다 이건 테세우스의 배라는 패러독스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패러독스인데,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돌아온 테세우스를 칭송하며 그가 원정에서 탔던 배를 그대로 오랫동안 보존했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보존할 때에 모든 것이 테세우스가 탔던 그대로가 아니라 부분 부분을 부서질 때마다 새것으로 교체해서 보존한 건데, 과연 이 배의 모든 부분이 새것으로 교체되어서 단..

일상/책 2023.10.19

선동열, 《선동열 야구학》

야구 데이터에 관심은 있다. 당연히. 시간 나면 선수들 데이터나 기록을 뜯어보기도 하고, 재미있는 기록이나 데이터를 정리하기도 한다. 한 시즌동안의 날씨를 모두 찾아내서 '날씨에 따른 선수별 타율'이라던가 '선수별 주루장갑 색에 따른 도루 성공률'같은 이상한 데이터를 만드는게 작은 취미라서 그렇다. 도대체 왜 저런 걸 만드냐면 야구에 진짜 쓸모있는 좋은 데이터들은 어차피 구단도 알고 해설도 알아서 다 말해주니까, 나한테 필요한 것은 오직 지금 그래서 이 선수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의 미래를 예견해주는 미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미신에 미쳐서 야구를 본다. 대부분의 야구관련한 말을 직감과 느낌으로 문장을 구성한다. 투수는 공을 던질 수 있는만큼 한계까지 던져야 진짜 투수가 된다고도 생각하고 (..

일상/책 2023.10.17

페리 베이셔틀 탑승기 :고베공항에서 간사이공항 가는법

간사이지방 여행을 계획하다 보면, 결국 오사카 난바 지역을 중심으로 인아웃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고베에서 간사이공항에 가려면 다시 오사카쪽으로 40분간 메트로를 탄 다음에,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배차간격은 극악이지만 어쨌든 시간만 잘 맞으면 되는 페리를 타면 바로 간사이공항으로 갈 수 있다! 알고는 있었으나 탑승은 이번이 처음인데, 재밌었다. 비오는 날 탔지만. 무려 두 달이나 늦은 베이셔틀 탑승기 시작~! 장점 - 간사이공항에서 1시간 이내에 고베산노미아역까지 갈 수 있다. 캐리어를 배에서 잘 맡아주기때문에 짐이 많아도 편하다. 배를 탄다는 것 자체로 재밌다. 여권확인 후 500엔으로 저렴하다.(+포트라이너 300엔?) 단점 - 흔들림이 심하다(내가 태풍오기 전날 타서 그런걸지도). 배차간격이 1..

일상/여행 2023.10.10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

당연히 봤다. 오펜하이머. 한 다섯번? 여덟 번은 본 것 같다;; 열번은 안 되었을껄 아마도. 개봉하면 꼭 보는 영화감독을 고르자면 조성희, 박찬욱, 최동훈,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사실 이 사람들의 영화 말고는 영화를 거의 안 본다. 그래서 당연히 놀란의 영화가 개봉했으니 당연히 보러갔다. 오펜하이머는 사회윤리나 정치윤리, 혹은 연구윤리같은 과목에서 스르륵 언급되곤 한다. 하이젠베르크, 텔러와 함께. 그래서 놀랍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안의 대부분의 인물을 내가 알고있었고, 뭐 그래서 더 쉬웠던 것 같다. 심지어 텔러는 등장하자마자 텔러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텔러라고 해서, 캐스팅에 기절할 뻔 했다. 원자폭탄의 탄생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그것이 오펜하이머의 삶의 한중간을 관통하기 때문에..

일상/영화 2023.09.18

신인드래프트 최고

간만에 만족스러운 신인드래프트였다. 난 진짜 근본없는 꼰대 영감이라 1차지명에 야수를 뽑는것도 끔찍하게 싫어하고, 제구가 불안정하다는 평가가 쬐끔이라도 있는 투수도 싫어하고, 해외파는 일단 거르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히어로즈 스카우터팀에 데인 게 많아서 그런지도... 그런데 이번 드랩은 3라까지 6장이나 들고 있었으면서 또 1라에 야수, 리턴파 투수, 제구만 다듬으면 되는 어쩌구 투수 이런 선수들을 뽑을까봐 얼마나 어젯밤까지 마음졸였는지ㅋㅋㅋ큐ㅠㅠㅠ 잠을 못 잘것같아서 ㅋㅋ저녁에 헌혈을 하고ㅋㅋㅋㅋㅋㅋ 몸을 강제로 피로하게 만들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제로 잤다ㅋㅋㅋ 그냥 기절한걸지도 모름 왜냐면 어지러워 핑 돌길래 누워서 눈감았더니 잠들었으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김..

일상/야구 2023.09.14

내가 히어로즈를 끊느니 야구를 끊는다

히어로즈 팬이라면 언제나 시련을 겪는다. 도망간 네이밍스폰서, 감옥 간 구단주(최대주주), 이와중에 선수는 싸그리 갖다 트레이드하는 프런트, FA로 모두 유출되는 내 추억들... 그리고 온갖 부정적인 비난의 시선. 프런트 이 XXX들이 내 추억이고 낭만이고 다 팔아버려서 은퇴식은 매번 타 팀의 은퇴식을 찾아가게 만드는 게, 이 팀을 응원하는 걸 그만두고싶게 하다가도 그라운드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선수가 있어서 다시 이 팀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기자들, 해설들, 자칭 야구계 원로라는 그 대단하신 분들이 지껄이는 말 때문에 다시 피의 쉴드를 치게 만든다. 얼마 전 고척스카이돔에서 한화와의 더블헤더가 결정되었다. 고척은 우천중단이 없어 예비일을 소진할 가능성이 0%임에도, KBO는 기계적 평등을 내세우며..

일상/야구 2023.09.12

230827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성남고 @목동구장

더보기 결국은 이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이렇게 시즌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와, 이 멤버들이 이렇게 하는 야구는 이렇게 막을 내렸구나- 하는 우울한 감상이 공존하는 대회 마지막 날입니다. 며칠 전에야 내가 이 선수들을 드디어 다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바로 끝이 찾아오다니,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퍽 슬픈 날에 가깝습니다.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서 항상 키나 체격, 걸음걸이, 행동패턴, 동작의 형태등을 외웠는데 이제 그걸 다 알아봐가는 날에 경기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더 선수로 살아갈지 선수로 사는 것을 그만둘지조차 모르는 팬의 입장에서는 그저 아득하기만 한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마 몇 명의 근황은 9월 14일이 되면 알게 될 거고, 몇 명은 내년 대학야구에서 이름을..

사진/고교야구 2023.08.28

230826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청담고 @신월구장

더보기 경기권 시합까지는 도저히 다닐 수가 없어서 전국대회가 아니면 얼굴을 못 보는 청담고(´•ω•̥`) 올해는 대통령배도 못 보고, 스케줄도 너무 안 맞아서 더더욱 자주 못 봤다. 선수들끼리 서로 사이도 참 좋아보여서 다들 잘 지내는 좋은 팀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쨌든 야구가 즐겁다면 다행이다. 내년에는 좀 더 오래 봤으면 좋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사진/고교야구 2023.08.27

코시엔이 막을 내렸다

원래 결승전까지 다 보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으나 우라와카쿠인의 탈락으로 이른 귀국을 했다.... 대통령배 걸렀으니 봉황대기는 봐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 4강전에서 센다이이쿠에이와 하나마키히가시가 붙는다는 걸 보고 또 억울해져서 그냥 일본 있을껄!! 이라고 진짜 육성으로 외치고 거실에 잠시 주저앉아 있기도 했으나, 그래도 사이타마 없는 전국대회는 엄청나게 감흥이 있을 것 같진 않아서 포기하길 잘 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근데 결승에 센다이이쿠에이가 올라가서 진짜 마음이 복잡했다. 1회전에서 우라와가쿠인을 탈락시켰으면 꼭 우승을 하라는 마음과 너네도 지라는 비틀린 마음이 공존했으니까. 전혀 어른답지 못한 졸렬한 마음으로 결승전을 보고 있는데 1회부터 케이오기주쿠가 홈런을 치는 걸 보고 껐다. 아무..

일상/야구 2023.08.24

230822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성남고 @목동구장

더보기 인간의 덕목은 일을 저질러놓고 후회하는것. 그렇다 지금 진짜 잘 나온 거 열개만 올리겠다는 마음으로 야구장에 입성해서, 정신이 나갈것같은 야구를 보고 쏟아지는 사진 홍수 속에서 그냥 냅다 이사진 저사진 물량으로 승부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행복하다. 어쨌든 이겼으니까. 목동에서 고척으로 바로 갔는데 고척은 졌지만.......... 하 유격수의 투수 등판도 보고, 마운드에서 내려가자마자 숨 고를 새도 없이 바로 안타를 치는 것도 보고, 암가드 차고 투구준비하는것도 보고, 다시 타석 들어왔다가 마운드 올라가는 것도 보고. 하여간에 좋은 구경 많이 했다. 투타겸업을 한다고 하면 일단 찌푸리고 보는 것과 별개로 투수가 타석에 들어가는 건 또 좋아한다. 제발 한 포지션이라도 잘 하라는 야구팬의 자아..

사진/고교야구 2023.08.23